금(金), 달러에 이어 은(銀) 사재기 열풍까지 불고 있다. 대형 금은방에서 1t이 넘는 실버바(은괴)를 ‘싹쓸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조폐공사가 인증한 실버바 500g, 1000g짜리는 시중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국금거래소의 상반기 은 판매량이 17.9t으로 지난해(1t)의 18배에 달한다. 은값은 최근 돈(3.75g)당 2580원 선으로 지난 5월에 비해 17%가량 뛰었다. 국내 은값은 ‘사재기’ 영향으로 국제가격보다도 10%가량 높다.

산업용 수요가 많은 은의 가격은 보통 경기가 좋으면 오르고 나쁘면 내린다. 통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다. 그런 만큼 경기 침체기인 요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금값이 많이 오르면 덩달아 뛰는 경우가 있지만 ‘차떼기’ 식으로 수억원어치의 은을 쓸어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자산가들이 느끼는 불안심리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국내 경기 침체에 북한 러시아 중국의 군사적 도발, 자꾸 멀어져만 가는 미국 일본과의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반(反)기업·반부자 정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관련 소문, 부동산 규제 강화, 증권시장 부진 등까지 겹치며 갈 곳 잃은 뭉칫돈이 특정 자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내국인의 해외부동산 투자가 전년에 비해 2.5배 늘고 해외 이주자는 4배 이상 증가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적잖은 돈이 이처럼 제도권을 벗어나면 시중자금 흐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데 있다. 금리 인하효과 역시 미미해진다. 최근에는 평범한 개인 중에도 불안한 마음에 달러 매입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금·은 사재기를 비롯한 이 모든 현상이 왜 벌어지는지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입맛에 맞는 통계만 골라 “보수 정권 때보다 소득이 더 늘었다”고 우길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