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87%(240원) 인상한 시급 8590원으로 결정했다. 인상률이 2010년 이후 최저지만, 2년간 과속 인상으로 영세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나서야 겨우 브레이크를 한 번 밟은 꼴이다. 3년간 최저임금 32.8% 인상이란 속도의 관성으로 인해 앞으로도 충격과 여진이 적지 않을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용상황, 경제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 수용도가 잘 반영됐다”고 평가했지만 “2%만 올려도 사약을 내리는 것”이라고 절규하는 자영업자들 가운데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정부·여당이 ‘속도조절’을 언급하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사용자 측 인상안에 손을 들어준 것은 그들 스스로도 최저임금의 ‘졸속·과속 인상’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최저임금은 이미 1만30원에 이른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한 게 아니라 조기 달성한 셈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미 중위임금의 64.5%로 OECD 37개 회원국 중 6위이고, 주휴수당 포함 시 1인당 국민소득 대비 OECD 최고다. OECD, IMF, 무디스 등이 한목소리로 그 위험성을 경고한 이유다. 오죽하면 영세사업장 근로자의 44%가 내년 최저임금 ‘동결’에 찬성했을까 싶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란 점이다. 시대착오적인 현행 제도 아래선 매년 똑같은 갈등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이원화에 그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체계를 뜯어고쳐야만 한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줄기차게 호소하고 있는 지역·업종·기업규모별 차등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각 지역의 생계비가 천차만별이고 호황·한계업종, 대·중소기업의 지급능력이 천양지차다. 선진국들도 다 하는 게 왜 한국에서만 안 되는지 납득할 수 없다.

턱없이 비좁게 설정된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통상임금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산정 시 매달 주는 기본급·수당만 계산해 연봉 8000만원짜리 고임 근로자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황당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회사 측이 두 달마다 주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해 최저임금 위반을 해소하려는 것조차 반대하며 총파업 으름장을 놓는다. 격차 해소에 주력하는 정부라면 이런 비정상과 부조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놔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정책의 지향점이 취약계층 최저생계 보장이지 귀족노조 임금 더 퍼주기가 아니지 않는가. 차제에 외국인 근로자의 숙식비가 최저임금 산정 시 제외돼 내국인보다 더 유리한 역차별도 손볼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실험 2년의 결과가 너무도 참담하다. 최저소득계층인 소득 1분위의 근로소득이 1분기에 25.9%나 감소한 것은 최저임금 급등으로 취약계층 일자리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제가 경제활력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 졸속·과속 정책의 부작용을 직시하고 회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