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국토연구원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공공기관 9곳과 경기연구원 서울연구원 등 6곳을 민자 SOC(사회간접자본)사업 제안서 검토 전문기관으로 새로 지정했다. 그동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담해오던 사업제안서 심사기관을 대폭 늘린 것이다. “소규모 사업 검토에 재량을 부여해 추진 속도를 빠르게 하려는 것”이라는 게 기재부 설명이지만, 이러다 곳곳에서 부실심사가 판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기재부는 “검토의 질을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이를 위반하면 전문기관 지정을 취소할 것”이라고 하지만, 민자 SOC 추진 속도를 높인다는 게 기본 취지여서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이다.

특히 민자사업을 추진하는 주무 관청이 제안서 검토를 수행하는 기관을 결정할 수 있게 한 점이 걱정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민자사업 적합성 심사를 그 지자체 산하 연구소가 수행하면 심사의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겠느냐는 얘기다.

새로 지정된 심사기관이 사업성을 검토하는 대상이 총사업비 2000억원 미만이면서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미만이거나 총사업비가 500억원 미만인 소규모 사업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통과가 보장되는 우회통로가 확보되면 민자 SOC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소규모 사업 기준에 맞추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부실심사로 수익성 없는 SOC가 난립할 우려는 민자투자사업만이 아니다. 그동안 경제성 미흡으로 제동이 걸렸던 대규모 SOC사업들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예비타당성 분석을 대거 면제받은 것부터 문제였다. 예타를 받아야 할 SOC사업들도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지역균형발전 평가 비중이 높아져 경제성이 없어도 예타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KDI가 전담해왔던 예타 조사기관에 조세재정연구원을 추가한 점도 그렇다. 심사기간을 줄이겠다는 취지라지만, 정부가 예타 예산권으로 심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경제성 등 심사를 통과하고서도 실패한 SOC사업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사기관 무더기 지정으로 독립성·전문성이 무너지면 부실평가 양산은 불 보듯 뻔하다. 그 대가는 거대한 혈세 낭비로 돌아올 것이다. 심사기간을 단축하겠다면 부실심사를 막을 장치부터 확실히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