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경제 제재에 들어간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와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TV·스마트폰의 액정화면 부품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감광액과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4일부터 시행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27개 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해 계약별로 수출 허가를 받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감광액과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로, 공급이 중단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체에 치명적이다. 일본이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가 신청과 심사에 90일 정도 걸려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감소로 고전 중인 기업들에 일본 악재까지 덮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일본이 보복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진작부터 제기됐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경제 보복 가능성을 거론하며 협박한 게 3월이다.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이 통관 및 결제 지연, 세무조사 등 크고 작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양국 간 교역이 9.3% 감소하는 등 경제적 악영향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강경 일변도 외교를 고집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한·일 관계 해법을 모색할 좋은 기회였지만, 정상회담은 끝내 열리지 못했다.

일본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 교역대상국이다.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외교 갈등이 경제 문제로 확산되면 두 나라 모두에 손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상호 경제보복이 현실화하면 기업들만 애꿎게 피해를 보고, 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외교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정부는 하루빨리 대화에 나서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