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화평법에 자동차 리콜까지 곳곳 추상적 처벌규정
공무원 자의적 해석 소지 키워놓곤 "잘 대처하면 된다"
기업활동을 불확실성 넘어 불안·공포로 몰아선 안 돼
불투명하고 모호한 법규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과 소비자 간 갈등도 부추긴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자동차안전학회 등이 지난 12일 개최한 ‘자동차 리콜 법·제도 개선 토론회’에서는 명확하지 못한 리콜(결함 시정) 관련 조항이 야기하는 각종 부작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법(자동차관리법 제31조)상 리콜 요건은 미국 등 주요 국가들과 달리 ‘안전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으로 너무 포괄적이다. 업체가 자발적 리콜을 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최고 10년 이하 징역형)까지 받는다. 자동차 제조사는 리콜 기준이 분명하지 않아 소비자 불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데다 자칫 잘못하면 여론에 떠밀려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자동차 제조사가 소극적으로 리콜한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모호한 리콜 규정은 기업 활동 전반을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다른 법규에 비하면 그나마 개선의 여지라도 남아 있다. 투자 등 의사결정 결과를 사후(事後)에 판단하는 배임죄로 많은 기업인이 옥고를 치르고 있는 가운데 기업인과 기업 활동을 옥죄는 ‘걸면 걸린다’ 식의 법규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산안법 시행령·시행규칙은 기업을 언제 어떤 기준에 걸려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내몰고 있다.

기업들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해 불가피한 경우’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 등 추상적인 문구(산안법 제52조)에 공장 가동 여부를 맡기고 있다. 사실상 공무원이 자의적 해석으로 작업 중지 명령을 남발할 길을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 “업종이나 기업별 사정이 달라 시행령에서 세세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정할 수 없었다”는 게 정부 논리인데, 다른 말로 하면 “아쉬운 기업들이 알아서 잘하면 될 것 아니냐”는 무책임과 다를 게 없다.

기업 대표자에게 전국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산업재해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 조항은 기업 활동을 불확실성을 넘어 불안과 공포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산안법은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사망 사고가 나면 사업주를 최고 7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원청사업주의 과실 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고, 원청사업주가 사업장 안팎의 작업 안전을 책임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업 하소연은 끝내 외면당했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도 현장 사정을 도외시한 ‘걸면 걸리는’ 과잉 법규로 꼽힌다. 내년부터 화관법 기준에 맞춰 저압(低壓)가스 배관검사를 하려면 일괄공정 체제인 반도체 공장 등은 1년 가까이 세워야 할 판이다.

한국에서 기업인과 기업은 이처럼 언제 어디서 어떤 ‘날벼락’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인이 어떻게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 등 국내외 각종 악재로 한국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규제 혁파’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외치고 있는 정부가 이제라도 무엇이 이를 실천하는 방법인지를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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