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남이 아는 나
내가 아는 나 자신이 내가 아니고, 남이 아는 내가 진정 나라면? 등골이 서늘해질 것 같다. 그런데 맞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1996년 이탈리아 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는 원숭이 뇌에 전극을 꽂고 뇌파 변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연구원이 간식을 먹으며 방에 들어섰는데 그를 보고 있던 원숭이의 뇌파가 움직였다. 그 뇌파는 원숭이 자신이 음식을 쥐고 입에 넣을 때 보이는 파동이었다. 가만히 있던 원숭이의 뇌파가 어떻게 실제로 먹은 것처럼 반응했을까? 여기에서 ‘거울뉴런’이 발견됐고, 고등동물의 특성인 ‘모방’이 거울뉴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인간만이 특이하게 지녔다는 ‘마음이론’으로 발전했다.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으며 제3자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을 ‘의식’해 알고 있지만 사실 다른 사람은 나의 ‘무의식’을 보고 나를 판단한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을 흘리는 행동누출(Behavioral Leakage) 때문이다. 학창 시절 어떤 친구랑 같이 있으면 주변이 악영향을 받아 같은 조가 되는 걸 꺼린 경험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친구는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른다.

과제를 풀어보자. 학생이 ‘D’를 받으면 학생부 카드 앞장에는 ‘D’, 뒷장에는 ‘3’으로 표시해야 한다. 학생부 정리가 잘 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꼭 뒤집어야 할 카드를 다음에서 골라보자. D, F, 3, 7. 어렵다면 다음 문제를 먼저 푼다. 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려면 반드시 ‘21세 이상’이어야 한다. 손님 네 명의 정보 카드에서 주점의 위반을 찾기 위해 꼭 뒤집어야 할 카드를 골라보자. 맥주, 콜라, 25세, 16세. 이것은 쉽다. 맥주와 16세가 적힌 카드다. 사실 이 두 문제는 같은 문제다. 첫 과제의 답은 D와 7이다. 앞의 것은 추상적 질문이고 뒤의 것은 구체적이다. 우리의 두뇌는 추상적인 상황을 어려워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바로 알아챈다.

병원에서 한 인턴이 환자의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인턴은 드레싱을 중단한 채 바로 휴대폰을 꺼내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드레싱을 계속했다. 환자는 바로 병원에 항의했고 인턴은 근무성적을 최하위로 받아 전공의 지원에 타격을 받았다. 인턴은 무슨 문제냐고 항변하겠지만 자신의 평가는 엉망이 됐다. 그래서 내가 아는 나는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