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굼벵이와 생명존중
“부우웅~~.” 새벽에 아파트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는 순간 내 눈앞을 스치면서 날아가는 작은 물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이런 녀석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매미 열댓 마리가 날아다니거나 바닥에 떨어져서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매미왕국이 돼버린 거실은 어제저녁 여기저기 나무나 화초에 둘째 아이가 붙여놨던 굼벵이들임이 분명했다.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한여름 밤에 더위도 식힐 겸 해서 한강 고수부지로 가다 보면 여기저기 고목나무에 7년의 시간을 인고한 굼벵이 수십 마리가 나무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침엔 나무 기둥에 허물만 여기저기 붙어 있고 그 많던 굼벵이는 매미가 돼 사라져버린 후였다.

그다음날 둘째가 밤에 나가서 굼벵이 열댓 마리를 잡아서 집안의 작은 화초뿐만 아니고 행운목 같은 나무에도 잔뜩 붙여 놓았는데, 바로 이 굼벵이들이 밤사이에 탈피한 뒤 거실 전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와보니 매매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 거실에서 붕붕 날아다니다가 대부분 죽어버렸고, 그중 두세 마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바닥에서 간신히 조금씩 꿈틀댔다.

매미들의 떼죽음을 만들어 놓은 ‘범인’은 방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거실엔 보이지도 않기에 불렀더니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신나게 놀다가 마루로 나왔다. 내가 매미 사체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매미들은 7년 동안 땅속에서 살다가 천적을 피해 밤에 나무로 기어 올라가던 녀석들이야. 매미가 되면 1주일 동안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면 그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마치게 된단다. 네가 굼벵이를 잡아 집에 가둬놔 짝짓기도 못하고 죽어버렸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내 이야기를 듣고 둘째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죽은 매미들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날 이후에도 둘째는 또 굼벵이를 잔뜩 잡아다가 집안 여기저기에 붙여 두었다. 그 굼벵이들은 그다음날 새벽에 똑같이 탈피해서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후다닥 아침밥을 다 먹어치운 둘째는 거실의 매미들을 베란다 창문을 열고 한 마리씩 차례로 날려 보냈다. 그날 이후로 둘째는 곤충 등을 가지고 놀다가도 숲속에 다시 놓아주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치 내가 감방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생명 존중이란 우리 가족과 우리 집의 반려동물을 넘어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고 따뜻하게 대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