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매일 일자리 상황을 점검합니다.”

청와대는 지난해 5월24일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지표를 보여주는 대형 스크린 두 개를 설치하면서 이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상황판을 직접 시연하며 “앞으로 좋은 일자리 정책이 더욱 신속하게 마련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스크린에 표시된 수치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자리와 직접 관련된 실업률, 취업자 증가, 청년실업 등 대부분 지표가 나빠졌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실시간으로 챙기겠다’는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기업 성장을 뒷받침해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는 중장기 정책 대신 공공 일자리, 재정 투입 등을 통한 단기 효과에 매진하는 정부 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고용 4대 핵심지표 모두 악화… 기존 근로자 복지 늘린 지표만 호전
◆주요 지표 대부분 악화

대통령 일자리 상황판은 일자리 상황, 일자리 창출, 일자리 질, 경제지표 등 크게 네 가지 분야로 구성된다. 이 중 핵심 지표는 일자리 상황으로 고용률, 취업자 수, 실업률, 청년 실업률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일자리 상황판이 만들어진 뒤 지난 1년간 이 네 가지 항목은 모두 악화됐다.

지난해 5월 일자리 상황판에 표시된 고용률(작년 4월 기준)은 66.6%였다. 하지만 15일 현재 상황판에 명시된 수치(올 3월 기준)는 0.5%포인트 떨어진 66.1%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폭도 월별로 계속 둔화되고 있다. 같은 기간 취업자 수도 2658만 명에서 2655만 명으로 감소했다.

대조적으로 실업률은 치솟았다. 상황판 설치 당시 4.2%(작년 4월 기준)에서 4.5%(올 3월 기준)로 상승했다. 실업률 4.5%는 3월 기준 실업률로는 1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청년 실업률도 이 기간 11.2%에서 11.6%로 악화됐다.

◆창업은 늘었다지만…

일자리 창출 지표 역시 부진했다. 특히 신규 취업자 수가 크게 악화됐다. 지난해 3월 46만 명, 4월 42만 명에 달하던 신규 취업자 수는 하반기에 월 20만 명대로 떨어졌고 올 들어 2, 3월에는 두 달 연속 1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창업은 소폭 개선된 수치를 나타냈지만 사실상 제자리다. 지난해 4월 9143건에서 올해 3월 9226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양질의 창업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가스 분야 창업이 대폭 늘어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4월 289개였던 전기·가스공급업체 수는 올해 3월 629개로 급증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기조에 따라 지원금을 따먹으려는 태양광 패널 설치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영향이다. 반면 양질의 제조업 창업은 1596개에서 1605개로 9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도 겉으론 안정된 수치로 나오지만 생활물가 급등 등을 감안하면 부진에 가깝다.

일자리 상황판 주요 지표 중 뚜렷하게 개선된 항목은 고용보험 가입자, 연간 근로시간, 임금 상승률 등 세 가지에 그쳤다. 한 민간기관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신규 일자리 진입은 틀어막고 기존 근로자들의 복지 혜택을 늘렸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상황판에 4년 지난 수치도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에는 실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된 수치나 부실한 데이터도 많다. 취업유발계수는 4년 전 데이터만 있을 뿐 최근 지표는 없다. 한국은행이 5년 마다 집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초 일자리 상황판에 넣기는 부적절한 지표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주요 지표 중 작년 6월과 8월 수치가 가장 최신인 사례가 4개에 이른다. 4대 보험 가입자는 취합만 제대로 하면 지난달 수치를 반영할 수 있지만 일자리 상황판에서는 작년 8월 수치가 마지막이다. 근로시간도 올해 2월까지 월 단위 취합이 가능한데도 2017년까지만 게재돼 있다. 상황판을 걸어놓고 제대로 신경쓰는 사람 없이 통계청 또는 고용노동부가 한 달마다 관련 통계를 발표하면 반영하는 식이다. 일각에서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상황판을 통한 단기 성과관리식 접근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판은 주식 시세판처럼 월별 수치 변동 상황을 중계방송하는 식”이라며 “정책 당국자들이 노동 시장의 단기 움직임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장기 추세선을 면밀히 따져보고 분석해서 정책을 집행해야 노동 시장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