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과 과학(2)
세계 각국은 재판과정에서 과학적 증거로 인한 오류를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적 분석의 근거가 되는 이론과 이를 적용하는 기술이 유효해야 하고, 구체적인 사건에서 훈련된 전문 인력이 적정한 과학수사 장비로 표준지침을 준수해 분석하는 등 과학적 기법이 적정하게 적용돼야 증거 사용이 가능하다.

그 전제로 과학적 증거는 감정물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증거물 보관의 연속성(chain of custody)’이 인정돼야 한다. 증거물의 채취, 보관, 분석 등 전 과정에서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 훼손, 첨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이 원칙을 준수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압수부터 감정까지 단계별로 세부절차를 수립해 감정물의 오염을 차단하면서, 보다 정밀하고 통일적인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법과학 개선 노력은 2004년 스페인 열차 폭탄테러 수사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잘못된 지문 감정으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린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다. 미국 의회는 2005년 국가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에 법과학의 여러 쟁점에 관한 연구를 요청했고, 위원회는 4년간의 심층 조사와 검토 끝에 용어와 절차의 표준화, 분석기관 인증과 전문가에 대한 자격증 도입, 윤리강령 수립,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13개 사항을 권고했다.

한국도 과학수사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분야별 전문 교육과정 운영, 자체 연구개발, 국내외 학술활동 등을 통해 전문가를 선발·육성해 왔다. 또 문서, DNA, 화학분야 등에 국제공인시험기관인 KOLAS(Korean Laboratory Accreditation Scheme)의 인정을 받아왔으며, 선진 해외사례 연구 및 학계와 실무 간 상호 협력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표준절차를 수립하고 고도화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대검찰청은 지난해 DNA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ISFG 학술총회를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하고, 디지털포렌식 툴을 개발해 세계 각국과 수사기법을 활발히 공유하는 등 한국의 과학수사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인권 보호와 정의실현의 중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과학수사가 최근의 폭발적인 수요에 제 역할과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선진적 인프라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과학수사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국가적 관심과 적극적 투자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