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으로 치달았던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대북(對北) 특별사절대표단 방북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에서 벗어나 대화의 문이 열리고 있어서다. 남북한은 4월 말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고 북·미 간 직접 대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대화를 지속하는 동안에는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조선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북 특사단이 한반도 평화의 문을 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부터 ‘통큰 결정’을 이끌어냈다는 반응도 나온다. 조선중앙TV가 특사단 방북을 보도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최상의 환대를 베풀고 생각지도 못한 통이 큰 결단을 내려준 데 대해 특사단이 감사를 표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아직은 낙관할 수 없다”고 밝힌 것처럼, 샴페인부터 터뜨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더없이 신중하고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 목표대로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非核化)’를 이루기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어서다. 북한의 대화 제스처가 김정은의 ‘통큰 결정’이 아니라, 시간을 끌고 제재를 피하려는 ‘통큰 책략’을 숨긴 것으로 보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미국은 여전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서 진전이 있었던 것 같지만, 거짓된 희망일지 모른다”고 한 것이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북한 비핵화까지 최대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과거의 모든 대화 노력이 실패했다”고 상기시키고는 “이번에도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중론의 바탕에는 북한 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은 핵 개발 작업을 벌여온 지난 25년 동안 자신들이 필요할 때면 대화에 나선 뒤 보상을 챙겼고, 그 돈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경수로 원자로를 받는 대신 핵 동결을 약속한 제네바 합의(1994년), 에너지를 지원받는 대가로 핵 개발을 중단하기로 한 9·19 공동성명(2005년), 식량 지원과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중단이 담긴 2·29 합의(2012년)를 그렇게 악용했다. 2·29 합의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이뤄진 약속이지만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북한과의 대화는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 ‘군사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북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새로울 것이 없는 주장일뿐더러, 줄줄이 조건을 매단 만큼 진정성을 의심해보는 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