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로 라우 연출·우르시나 라르디 주연 스위스 작품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는 신비의 시간…연극 '에브리우먼'
"돌 하나 때문에 나는 죽는 거예요.

내가 돌멩이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한때는 주우러 다니기도 했다니까요…제 진단서는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어요.

"
스크린 속 노년의 여인 헬가 베다우가 무대 위의 젊은 여자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에게 신세를 한탄하며 이렇게 말한다.

라르디는 무대 왼편에 놓인 피아노로 다가가더니 진단서를 펼치곤 어려운 의학 용어로 된 긴 병명을 읽어 내려간다.

베다우가 진단받은 병은 췌장암. 발견 당시 수술이나 치료로는 소생이 불가능한 말기 상태였다.

병마와 싸우던 그는 작년 1월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스크린을 통해 되살아나 라르디와 이야기를 나누고 관객과 호흡한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스위스 연극 '에브리우먼'은 죽은 자와 산 자가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시간을 선물했다.

베다우가 생전에 녹화한 영상을 스크린으로 재생하고, 그의 말에 맞춰 라르디가 대사를 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마치 두 사람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출가 밀로 라우를 비롯한 창작진은 독일 베를린의 모든 호스피스에 연락해 이 작품에 출연할 배우를 찾아 나선 끝에 베다우를 섭외했다.

베다우를 실제 무대가 아닌 영상으로 등장시킨 이유는 그가 초연 때까지 생존하리라 기대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차선책인 이 같은 연출 방식 덕분에 관객은 죽음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있음을 더 명징하게 깨닫게 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는 신비의 시간…연극 '에브리우먼'
스크린에서 베다우가 등장하기 전까지 극은 라르디가 홀로 끌고 나간다.

큰 바윗덩어리 몇 개와 피아노, 카세트 등 단출한 소품만 놓인 무대 중앙에 선 그는 객석을 바라보며 고향이나 어릴 적 추억 같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연극인가 생각이 들 때쯤에서야 라르디는 경마장에서 죽어가는 말을 목격한 일화를 풀어놓는다.

다리가 부러져 살점이 너덜거리는 말을 떠올리는 그의 표정은 참담하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파리떼가 말의 주위로 몰려들고, 말은 어서 오란 듯 눈망울을 굴리는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관객들이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순간 정말로 죽음을 앞둔 베다우가 영상으로 나타난다.

아름답던 청춘, 사랑에 빠진 경험, 아이를 얻었던 때를 회고하는 베다우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는 관객에게 더는 '남'이 아니게 된다.

그가 앞둔 죽음이라는 것도 점차 또렷해져 타인만의 일이 아니라 나 역시 곧 겪게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같은 신비한 경험은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베다우는 "이젠 무덤으로 갈 시간"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라르디는 무대에 비를 뿌린 후 피아노를 연주한다.

스크린 속 베다우는 점차 멀어지며 페이드아웃 된다.

한 인간의 생애와 죽음을 함께한 관객들은 각자 지난 삶의 행로를 반추하는 한편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절대 불변의 사실을 곱씹을 듯하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는 신비의 시간…연극 '에브리우먼'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봉자로 불리는 밀로 라우는 "심화한 집단이기주의로 연대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현대사회에 '또 다른 연대의 당위성'을 제안하는 작품"이라고 '에브리우먼'을 소개했다.

공동체의 힘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마저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르디는 무대에서 "과연 사람들에게 다른 개인이 보이기는 하는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며 연대를 호소하기도 한다.

라르디와 라우가 함께 극본을 쓴 '에브리우먼'은 작가주의 색채가 상당히 강해 다소 현학적이고 난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타인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점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날카로운 메시지와 실험적인 형식으로 호평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