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업계를 대변할 단체들을 설립하고 회원 확대에 나서는 등 조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보도다(한경 2월13일자 A17면 참조).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상반기에 사단법인 전환을 마무리하고, 회원사를 200개사에서 1000개사로 늘릴 계획이다.

카풀 운영 업체인 풀러스 등 28개사가 참여한 한국공유경제협회는 지난달 말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도 최근 1년 새 회원사를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규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조직화가 절실하다는 업계의 절박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규제개혁으로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규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도 허용하는 원격진료가 한국에서는 여전히 막혀 있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민간 기업이 의료·금융과 관련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빅데이터 사업을 벌이지만, 국내에선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 탓에 사업화할 엄두를 못 낸다. 기업들이 유전자 가위 등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도 실험하러 외국으로 가야 하는 처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의료 등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 수준은 주요 경쟁국들에 크게 뒤처져 있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미국은 99.8점, 유럽연합(EU)은 92.3점, 일본은 90.9점인 데 비해 한국은 77.4점에 불과했다.

새로운 산업은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불법 취급을 받는 상황에서 기술 격차를 줄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혁신 기술도 시장에 먼저 진입한 기득권 세력과 이익단체에 밀려 사업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벤처기업협회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작년 말 “정부가 규제를 혁파하면 좋은 일자리 2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호소했겠는가.

역대 정부들은 지난 20년 가까이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규제들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규제개혁에는)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던 과감한 방식, 그야말로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이 이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규제 샌드박스’ 등 혁신 과제들을 속도감 있게 입법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