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중소기업벤처부, 약인가 독인가
15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 연평균 10%의 높은 성장률, 대기업보다 5배나 많은 종업원 1인당 특허 등록 건수,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거의 모든 기업이 살아남은 놀라운 생존율…. 중소기업을 통한 일자리를 외치는 문재인 정부로선 귀가 번쩍 뜨일 얘기다.

중소 규모임에도 세계적 기업인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연구로 유명한 헤르만 지몬. 그가 얼마 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2017년 5월)에서 히든 챔피언을 다시 조명했다. 이번에는 ‘왜 독일은 여전히 그렇게 많은 중산층 제조업 일자리를 갖고 있느냐’는 주제다.

지몬은 모든 나라가 독일 히든 챔피언을 모방하려고 하지만 쉽게 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히든 챔피언을 개별적으로 보면 ‘리더십의 연속성’ 등이 성공요인으로 꼽히지만, 왜 하필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넘치는지의 이유도 많다는 주장이다. 1918년까지만 해도 작은 독립국들로 분열돼 있던 독일 역사로 인해 기업이 국제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과학기술 경쟁력, 독일 특유의 도제시스템, 세제 혜택, 국제적 개방성 등이다.

특히 개방성과 관련해 지몬이 주목한 건 ‘멘탈(mental)’이다. 기업이 작으니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집중하면 시장이 작아지니 ‘해외’를 개척한다는, 이른바 ‘멘탈의 글로벌화’다.

지금 한국은 새 정부가 들어와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 간다며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시킨다고 난리다. 그런데 지몬의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정부 부처 얘기는 없다. 부 승격 아이디어는 어느 나라를 벤치마킹한 걸까.

‘대(大)부처주의’ 독일에선 경제에너지부(부총리급) 밑에 산업·대외경제·디지털혁신·중소기업정책실(차관급)이 있고 그 밑에 중소기업정책총국(실장급)이 있을 뿐이다. 프랑스도 경제재무부(장관급) 소속인 소상공인·소비·사회연대 경제담당 국무차관 밑에 기업총국(실장급)이 있는 식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작은 나라일까. 경제고용부(핀란드), 경제·중소기업·중산층·에너지부(벨기에), 일자리·기업·혁신부(아일랜드), 기업혁신부(스웨덴) 등이니 여기도 아니다.

일본은 지금의 한국처럼 경제산업성(장관급)-중소기업청(차관급) 체제다. ‘소(小)부처주의’ 미국에선 독립된 ‘부(部)’는 아니지만 대통령 직속 행정조직인 장관급 중소기업청(SBA)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다루는 다른 부처와의 협치·조정이 포인트여서 좀 다르다. 결국 찾다가 설마하고 들여다본 나라는 소부처주의 인도다. 여기에 장관급 중소기업부가 있다.

지몬은 히든 챔피언을 키우겠다는 나라에 충고한다. “각자 고유 조건에 맞게 접근하라”고. 한국이 중소기업청을 부로 승격시켜 강한 중소기업이 쏟아질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354만 중소기업의 숙원이란 말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 설움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영역이 파괴된다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지 않나. ‘기능’이 아니라 중소기업, 벤처 등 ‘영역’을 가르는 부처 격상이 시대정신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단체,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약사협회 등의 포로가 돼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벌써 ‘대기업 조사권’을 달라는 심상찮은 요구가 터져나온다.

대폭 늘어날 거라는 예산도 양날의 칼이다. 중소기업청만 해도 정책자금을 포함하면 8조원에 육박한다. 부로 승격하면 10조원을 넘기는 건 시간문제다. 지금도 정부지원금, 누구나 5000만원 받을 수 있다라는 책이 나오는가 하면, 이를 강연하러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돈은 돈대로 퍼붓고 혹여 지몬이 말하는 ‘히든챔피언 멘탈’마저 사라지면 말짱 헛일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