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인 서희(오른쪽)와 다니엘 카마르고가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공연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인 서희(오른쪽)와 다니엘 카마르고가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공연하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케네스 맥밀런(1929~1992)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날부터 관객들로 가득찼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월드스타 서희였다. 서희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간판으로 최초의 동양인 수석무용수다. 여기에 다니엘 카마르고까지 내한하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대하게 했다.

사랑일까, 아닐까. 흔히 사랑은 그 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그 마음이 확인되는 순간 사랑은 폭발한다. 안무가 맥밀런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1막 발코니 파드되(2인무)가 그 부분이다. 모든 발레 작품을 통틀어 프로코피예프의 음악과 함께하는 이 발코니 파드되는 가장 로맨틱한 장면으로 꼽힌다.

로미오의 키스를 받고 행복한 마음이 복받쳐 발코니 위로 달려가 로미오를 향해 손을 뻗는 줄리엣. 로미오도 줄리엣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의 손이 맞닿지 않는다. 맥밀런은 1965년 작품을 만들며 이곳에 중요한 복선을 숨겨놨다.

맥밀런은 마지막 장면에서 단도로 자신을 찌른 줄리엣이 로미오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지만 끝내 그 손을 잡지 못하고 침대 위에 널브러진 채 죽음을 맞이하도록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장면에서 비극의 감정을 분출시키고 연결한 것이다.

서사가 강렬한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음악도 이 비극적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발코니 파드되를 주도한 주제부는 두 사람의 죽어가는 엔딩 장면에 음울한 선율을 타고 깔려 들어간다. 음악을 통해 발코니에서 사랑을 확인하던 두 사람의 모습은 환영처럼 죽음의 그림자 위로 오버랩된다.

11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 월드스타 서희의 내한 공연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기술적으로는 파드되 때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날개가 달린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부유하는 체공력을 보여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발끝까지 에너지를 짱짱하게 유지하며 발레가 원하는 정형미와 선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그 수려한 발등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줄리엣 역할은 ‘백조의 호수’ 오데트와 오딜을 연기하는 주역 못지않게 힘든 역할이다. 철없는 10대의 모습에서부터 무도회에서 이성을 보고 설레는 감정에 눈을 뜨는 모습, 마음에 없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부모의 요구에 거절과 절망이 오가는 몸짓,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비장하게 약을 마시며 마지막 순간 연인의 뒤를 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까지…. 줄리엣만큼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어디 있을까. 서희는 그 감정 변화를 정확히 표현하며 전체를 이끄는 힘을 발휘했다.

로미오 역의 카마르고는 첫날 1막 전반부에서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면을 보였으나 발코니 파드되에서 폭발적인 감정선과 파드되 호흡을 드러냈고 이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머큐쇼 역의 이고르 콘타레프, 티볼트 역의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 벤볼리오 역의 임선우 무용수는 로미오의 든든한 받침대가 됐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 로미오와 줄리엣은 늘 빠지지 않는 이야기다. 16세기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쓴 문학은 러시아에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으로 발레와 만나고, 20세기 영국의 맥밀런에 의해 새로운 안무작으로 탄생해 21세기 한국 무대를 수놓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름이 6세기에 걸쳐 많은 나라 사이에서 사랑, 그리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는 걸 확인한 자리. 죽음으로도 맞잡지 못한 두 손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음악과 춤 사이에서, 이렇게 발레로 맞닿았다.

이단비 작가·<발레, 무도에의 권유>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