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저무는 각자도생의 시대 그리고 대선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버려졌다. 황폐한 이 섬은 몇 십년 만에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이 됐다. 사회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그 비결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 ‘청결.’ 사람도 거리도 관료도 나라도 깨끗해야 한다는 코드의 힘이었다고. 다른 나라도 분석했다. 독일은 ‘질서’, 일본은 ‘안전’이라는 코드가 국가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했다.

한국은 어떨까. 라파이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의 코드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대마다 뚜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를 찾기 위해 숫자를 들여다봤다.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던 해, 시대는 전환기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1962년 3.8%, 1980년 -1.7%, 1998년 -5.5%. 과도한 단순화에 대한 우려를 뒤로하고 이를 정리해봤다. 1945년 이후 한국 사회의 코드는 17~18년 간격을 두고 변했다.

1945년부터 1961년까지는 ‘생존’이라는 목표가 모든 사람을 지배했다. 6·25전쟁과 보릿고개의 시간이었다. 1961년 5·16이 일어났다. 군사정권을 통해 새로운 코드가 주입됐다. ‘성장’이었다. 모든 사람이 성장을 향해 내달렸다.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향한 농민들은 산업화의 이름 없는 주역이 됐다. 이 시대를 압축하는 슬로건은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함께’였다. 교육은 그 도구였다.

성장의 시대는 1979년 10월26일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막을 내렸다. 새로운 시대는 1980년 서울의 봄과 함께 찾아왔다. 유보했던 권리를 돌려달라는 요구가 터져 나왔다. 출발은 비극적이었다. 광주의 외침은 핏빛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광주는 분배의 시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이었다. 이후 학원에서도 공장에서도 분배의 요구가 이어졌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슬로건은 노태우 대통령의 ‘보통사람의 시대’다. 분배의 결과는 중산층의 나라였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중산층 비중은 75%로 정점을 찍었다.

분배란 시대정신은 1997년 대통령 선거로 그 역할을 다한다. 김대중이 집권했다. 정권교체는 분배시대를 상징하는 클라이맥스였다. DJ의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은 외환위기와 맞물리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사회의 방향키를 전혀 다른 곳으로 돌렸다. 종신 고용은 사라지고 명예퇴직과 구조조정, 양극화가 일상적 용어가 됐다. 교육은 성장 사다리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외환위기 이후 2015년까지를 각자도생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무한경쟁 시대에 대중들의 정치적 전략은 고통을 줄여줄 위인을 찾는 것이었다. 2007년엔 ‘경제대통령’, 2012년에는 ‘국민행복시대’를 외친 인물을 청와대로 보내줬다. 결말은 허무했다.

2016년 새로운 에너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가을의 낙엽도, 겨울의 눈꽃도 포기했다. 대신 택한 곳은 광장이다. 저절로 오지 않는 시대를 불러내려는 듯 스스로 모여들었다. 이름 붙일 수 없지만 그 기운은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광장의 에너지를 시대정신으로 바꿔 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