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문재인 전 대표는 박성택 회장을 만나보시라
“내년 대선에서 패배하면 한강에 빠져야 할지 모른다”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틀 전 발언이 민망한 반향을 일으켰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인 한국에서 정치인은 말조심해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말을 왜 하나.”(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문 전 대표가 신자인) 천주교에서 자살은 손꼽히는 죄악인데, 그런 말 하면 날라리 신자가 되는 것이다.”(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아군끼리의 모임’에서 ‘웃자고 한 얘기’일 텐데, 길게 따질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지난 6일 문 전 대표가 자신의 대선 싱크탱크 창립 심포지엄에서 ‘정색하고 한 얘기’에 궁금한 게 더 많다. “국내 제조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10년 동안 40조원의 국내 투자가 무산돼 24만2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날아갔다. 국내로 돌아와 새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특혜를 주겠다.”

제조기업들의 ‘엑소더스(탈출)’는 심각한 문제다. 따져야 할 것은 “왜” 국내 투자를 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느냐다. 정확한 분석과 진단부터 내리는 게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걸 빼놓고 ‘최대한의 특혜’를 거론하는 처방전이 무섭다.

기업들의 해외 이전은,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노조 과보호로 유연성을 상실한 고용시장과 생산성 추락 탓이다. 문 전 대표가 ‘대개조’와 ‘대청소’를 통해 바로잡겠다는 ‘양극화 정글’과 ‘특권 사회’의 한 축을 틀어쥔 집단이 “정치권력화한 대기업 귀족노조들”이라고 절규한 사람은 중소기업중앙회의 박성택 회장이다.

문 전 대표와 그의 ‘브레인’을 자임하는 500여명의 대학교수들에게 박 회장이 한경에 쓴 호소문, <최악의 청년실업·중소기업 구인난, 누구 때문인가>(2015년 11월30일자 A1면 톱)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20년 전 대기업의 77% 수준이던 중소기업 임금이 지난해 56.7%로 떨어졌다. 대기업 임금 상승률이 중소기업을 압도한 결과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도 지나친 임금 인상 부담을 전가하기 위해서다. 부담을 떠안은 중소기업들은 임금 인상 여력이 없어진다. 그 결과가 대·중소기업 간 임금 양극화다. 청년실업률이 높은 것은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대기업만을 바라보는 탓이다. 청년들은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는데,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난리다.”

박 회장 기고문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대기업은 임금 인상으로 채산성이 떨어지면 해외로 나가면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도 없다. 노동개혁은 중소기업에 생존의 문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노동 귀족들이 만드는 자동차를 사서는 안된다”며 현대자동차 불매운동을 경고한 게 얼마 전이다. 평균 인건비가 1억원에 육박하는 현대차 노조가 임금인상폭 확대를 요구하며 또 파업을 벌이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박 회장이 육필호소문을 쓴 지 1년이 돼 가지만, 중소기업들을 병들어 가게 하는 ‘양극화 모순’의 원인은 한 치도 개선되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심포지엄 연설에서 “공정한 시장질서를 해치는 반칙과 특권을 뿌리 뽑고, 반칙하면 반드시 손해를 보도록 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 대상으로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문어발식 확장’을 꼽았다. 편파적이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에 더해 “우리 경제 문제점의 경중(輕重)을 제대로 짚고 있는 건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한강 투신’의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국가 최고경영자가 돼 보겠다는 정치인이라면,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균형감을 갖춘 아젠다가 필요하다. 낡은 노동정책 구조를 그냥 두고도 우리 경제의 생태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 문 전 대표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듣기를 권한다.

여러 가지로 만신창이가 돼 가고 있는 대기업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비(是非)를 제대로 가려 특권 노조에 할 말을 하고 필요한 개혁의 칼을 빼드는 것이 진짜 용기다.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