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난민과 테러에 닫히는 유럽의 '열린 국경'
브레너 고개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있는 고개다. 예로부터 유럽 남북부를 오가는 교통 및 교역의 연결로가 돼 왔다. 과거에는 통관수속을 기다리는 트럭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으나, 1995년 솅겐협정 발효 이후 빠른 속도로 차량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말뫼는 스웨덴 남단의 상공업 도시다. 작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마주한 곳이다. 역시 솅겐협정으로 인력과 상품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자 코펜하겐과 일일생활권을 이루며 단일화된 경제권으로 발전했다. 현재 두 도시를 오가는 통근자 수는 약 2만명으로, 국경을 초월한 도시 간 네트워크의 롤모델로 꼽힌다.

위의 예는 솅겐협정을 전후로 달라진 유럽의 모습이다. 솅겐협정은 비자 등을 제시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22개국(영국, 아일랜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키프로스, 크로아티아 제외)과 비(非)EU 회원국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 총 2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솅겐협정이 가져온 혜택은 상상 이상이다. 매년 13억명과 5700만대의 화물차가 통관 절차 없이 국경을 통과한다. 스페인산 올리브와 독일산 전자제품이 한 나라 안에서 판매되는 것처럼 다른 회원국에 수출된다. 인력 이동도 수월해져 매일 17만명이 국경을 넘어 출퇴근한다.

솅겐협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이라는 난민사태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위험이 맞물리면서 일부 회원국들이 속속 국경을 통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을 감안해 국경 통제를 용인한다는 방침이어서 솅겐협정의 미래는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솅겐협정이 폐지되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한다. 국경 통제를 위한 인력 및 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운송비 증가, 관광산업 위축 등 손실이 발생해서다. EU 집행위는 이런 비용이 연 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경제적 비용뿐이겠는가. 솅겐협정은 단일 통화와 함께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유럽 통합의 근간이자 상징이다. 솅겐협정이 와해된다면 유럽은 정치·경제적 손해 및 경쟁력 저하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있는 스페인에서는 국경이 통제되지 않고 있으나 입국 심사가 전보다 까다로워졌다. 솅겐협정은 유럽 시민뿐 아니라 역외국 국민에게도 적용된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우리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협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솅겐협정은 솅겐국 출국 예정일로부터 역산해 180일 기간 중 90일까지 무비자로 솅겐 지역을 여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지만 자주 유럽을 오갔거나 장기간 여행을 고려 중이라면 사전에 방문 국가와 체류 일수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솅겐협정보다 우리와의 비자면제협정을 우선시하는 국가도 있다. 실제로는 이와 무관하게 솅겐협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급적 솅겐 요건을 지키면서 여행하는 편이 안전하다. 만일을 대비해 유럽 내 체류를 증빙할 수 있는 항공권, 기차표, 숙박 영수증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간혹 여권에 서명하지 않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위조 여권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확인하는 것이 좋다.

박희권 < 주 스페인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