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700여명 고용승계·자산 흡수해 신규 컨테이너선사 출범

법원이 14일 한진해운의 미주노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SM그룹을 선정한 것은 한진해운의 인력과 노하우를 최대한 살려서 넘기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SM그룹은 '모태' 해운회사는 아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해 온 재계 50위권 안팎의 중견 그룹이다.

대한해운을 2013년 11월 인수해 해운업에 진출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법정관리 중인 삼선로직스 지분 73.8%를 확보하면서 업계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한해운과 삼선로직스는 모두 벌크선사로 컨테이너선 사업을 하지 않는다.

SM그룹은 이번에 인수한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삼선로직스와 바로 합병하거나 시간을 두고 합병해 컨테이너선 사업에 진출한다는 구상이다.

원양 컨테이너선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박 등 유형 자산보다는 영업망, 인력, 신뢰도 등 무형 자산이다.

SM그룹으로서는 한진해운이 주력인 미주노선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이러한 무형 자산을 통째로 흡수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기회다.

법원과 한진해운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고용을 최대한 승계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그룹사 내에서 새 출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SM그룹은 한진해운의 육상직원 300여명을 포함해 총 700여명의 고용을 승계하겠다고 법원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장승한 육상노조위원장은 "이번 자산 매각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것이 고용 승계 규모였는데 어느 정도 만족한다"면서 "새로운 컨테이너선사가 출범하면 현대상선과 함께 경쟁하면서 발전해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M그룹은 한진해운의 또 다른 알짜 자산인 미국 롱비치터미널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도 확보했으며 인수를 추진할 예정이다.

미국 서부항만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이상을 처리하는 거점인 롱비치터미널까지 확보하면 컨테이너선 사업을 확장하기가 더욱 수월할 전망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SM그룹이 여태까지 M&A에서 실패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경영을 잘한다고 들었다"며 "이런 점에서 한진해운의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롱비치터미널을 통해 미주 역내 경쟁력 확대를 노렸으나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과 인력을 인수할 경우 겹치는 영역이 많은 탓에 충분히 흡수하기 어렵고, 오히려 재무건전성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해서 제기됐다.

현대상선은 이날 오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데, 올해 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진해운 육상노조는 이날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되기에 앞서 성명을 내고 "부실기업에는 결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줘서는 안 된다"며 현대상선 선정을 우회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물류 관점에서도 국적 컨테이너 선사를 한 곳만 두고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규모가 작더라도 또 다른 선사가 존재하는 것이 화주들 입장에서 위험 부담이 적다는 견해가 있다.

현대상선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나 글로벌 선사들의 합병과 치킨게임이 지속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자산 실사 후 합리적인 가격과 조건을 제시했으며 추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인수·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단기 수익성 개선과 중장기 경쟁력 강화에 더욱 매진할 것이며 우선적으로 국내외 터미널 확보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