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문 닫을 뻔한 회사 살려낸 'M&A 승부사' 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
지난달 25일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기아 전’. 경기 시작 직전 안경을 끼고 배가 조금 나온 중년의 남자가 마운드에 올랐다. 기아 유니폼을 입은 그의 등판에는 ‘서명석’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55)이었다. 광주구장에 펜스 광고를 하는 유안타증권의 서 사장이 회사 홍보 겸 시구자로 나서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기아 측이 흔쾌히 ‘오케이’한 것.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즐기고 야구로 유명한 서울 충암고 출신인 서 사장은 보란 듯이 힘차게 공을 뿌렸다.

유안타증권의 ‘시구 마케팅’은 회사 이름이 야구 용어인 ‘안타’와 겹치는 점에서 착안했다. 대만 유안타증권이 옛 동양증권을 인수해 2014년 10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회사 인지도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서 사장은 “회사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며 시구 배경을 설명했다. 다른 기업에 인수되고 이름도 바뀌었지만 31년째 재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그의 회사 사랑은 남달랐다.

‘동양 사태’ 여파로 도산 위기에 내몰리던 옛 동양증권은 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사회생했다. 당시 동양증권 매각 협상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서 사장이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에게도 비밀로 한 채 매각 협상을 이끈 그를 두고 한때 회사를 구한 ‘영웅’과 회사를 팔아넘긴 ‘배신자’라는 극단적 평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직원이 매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있다.

옛 ‘동양’의 대표 증권맨

서 사장은 옛 동양증권에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 자리까지 오른 대표적인 ‘동양증권맨’이다. 그만큼 무용담도 많다. 그는 입사 후 모든 상장사 차트를 직접 손으로 그렸다. 세칭 ‘SKY(서울·고려·연세대)’에만 관심을 두던 회사 분위기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시중에 나온 주식 관련 책을 모두 사서 독파했다.

그는 “개인투자자도 언제 팔고 언제 사야 할지 냉철하게 판단하면 얼마든지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서 사장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해외 학력이나 업무 경험이 없는 ‘순수 토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리서치센터장까지 올랐다. 직장생활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증권업과는 전혀 무관한 동양파워 발전사업추진본부장을 맡으면서다.

2011년 동양증권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은 그는 당시 그룹이 직면한 자금난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의 머리를 스친 것은 강원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 폐광산 부지. 여기에 화력발전소를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추진해 설립한 동양파워를 2014년 6월 포스코에 4300억원을 받고 팔았다. 기존 광산 부지 가치가 약 200억원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41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실현한 것이다. 그는 “이 사업의 성공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그룹 계열사들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수중에 땡전 한 푼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M&A 관철한 ‘유연한 사고’

‘동양 사태’는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이 2013년 2월부터 9월까지 동양증권을 통해 1조3032억원어치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약 4만명의 투자자에게 불완전 판매한 사건으로 회자된다. 그해 10월 한 달간 동양증권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빠져나간 돈만 15조원에 달했다. 그대로 두면 동양증권이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시 동양증권 부사장이던 서 사장은 M&A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돌진했다. 매각만이 동양증권을 도산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룹 최고경영진은 물론 동양증권 사장에까지 매각 추진 사실을 비밀로 했다. 이들이 반대하면 매각 추진이 불가능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 “1주일간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시내 모처로 동양증권 투자은행(IB) 담당 직원들을 데리고 나갔다. 매일 밤을 새우며 매각 자료를 정리한 뒤 대만으로 건너가 협상을 시작했다. 회사의 모든 자료를 솔직하게 공개하고 동양증권의 잠재력을 평가해줄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결국 대만 유안타금융그룹이 동양증권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신뢰 위기만 극복하면 동양증권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설득한 그의 뚝심이 일궈낸 성과였다. 이에 대해 동양증권맨이 자신을 키운 동양그룹 등에 칼을 꽂았다는 힐난도 받았다. 당시 서 사장은 “동양증권이 살아남을 길은 M&A뿐”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누가 옳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인의식과 활자 중독증

서 사장이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당부하는 말이 있다. 뜻을 크게 품고 주인의 마음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입사할 때부터 사장이 된다는 각오를 다진 본인의 경험담도 전한다. 그는 2000년 마흔의 나이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영어도 잘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5년 동안 새벽에 시간을 내 영어학원을 다녔다. 이때 갈고닦은 영어 실력은 동양증권 매각 프레젠테이션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서 사장은 “대표이사가 될 때에 대비해 영어 공부를 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사장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서 사장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보다 ‘활자 중독증’에 가까운 독서의 힘이라는 게 주변 사람의 평가다. 서 사장은 지금도 주말마다 시간을 내 한 권 이상 책을 읽는다. 그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독서가 삶을 바꾼다”며 “내 모든 의사결정에는 독서를 통해 쌓은 식견과 경험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특화만이 살길

서 사장은 자신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유안타증권 역시 ‘차별화 전략’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했다. 중소형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남과 달라지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핵심 사업으로 키우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화권 특화 증권사다. 유안타그룹의 네트워크와 자원을 총동원해 국내 최고의 중화권 전문 증권사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서 사장은 “언어와 네트워크에서 유안타증권이 절대적 우위에 있다”며 “유안타증권이 중국 시장과 한국 시장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다른 경쟁력은 바로 ‘티레이더’다. 주식을 언제 사고, 팔아야 할지 알려주는 인공지능 주식매매 시스템이다. 이는 ‘개미’들도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게 해주자는 서 사장의 평소 철학이 녹아든 것이다. 앞으로 증권사는 수수료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경쟁으로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소신이기도 하다.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이라며 “유안타증권은 티레이더를 통해 이를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서명석 사장 프로필

△1961년 서울 출생 △1980년 충암고 졸업 △1987년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동양증권 입사 △1996년 투자분석부 애널리스트 △2006년 리서치센터장 △2011년 경영기획본부장 △2011년 동양파워 발전사업추진본부장 △2013년 동양증권 부사장 △2013년 동양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4년 유안타증권 공동대표 사장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