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멍게 향미
“물질하다 이런 횡재도 있네. 멍게밭이 좍 깔렸어. 황금 노다지라니깐. 굵은 놈은 내다 팔고 나머지는 동네 애들 다 불러다 잔치라도 할까봐.” 이런 날 해녀들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아이들도 마냥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상큼하면서도 쌉싸름한 멍게의 향미가 밤새 입안을 감돌았다.

멍게는 남동해안의 수심 2~6m에 주로 산다. 물속 바위나 해초에 달라붙은 모습이 붉은 꽃무리 같다. 개체가 떨어져 살기도 하지만 군집을 이루기도 한다. 이게 바로 ‘바다의 노다지’다. 싱싱한 멍게는 껍질 색이 붉고 단단하다. 속살은 오렌지색이며 특유의 향을 풍긴다. 대부분은 싱싱한 회로 즐긴다. 비빔밥이나 젓갈·구이·조림·찜·전도 맛있다.

멍게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입과 코를 휘감는 특유의 향은 불포화 알코올인 신티올 덕분이다. 이 성분은 숙취해소에도 좋다. 멍게 안주로 술을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멍게 근육 속에는 글리코겐이 약 11.6%나 포함돼 있다. 영양가가 높다는 굴의 두 배나 된다. 글리코겐은 인체의 근육 형성을 돕는다. 우리 몸에 포도당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다당류여서 피로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자연산이 더 좋지만 양식도 괜찮다. 1~2월 남해안과 동해안에서 멍게 포자를 바다에 던져 몇 년씩 키운다. 최근에는 서해에서도 양식을 시작했다. 전북 군산 앞바다 고군산군도의 양식 시범사업이 조만간 결실을 볼 전망이다. 한국 멍게 양식량은 1995년 2만2000여t까지 늘었다가 서식 환경 악화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일본산 양식 멍게는 알이 크고 값도 싸지만 국산보다 맛이 떨어진다. 2011년 쓰나미 여파로 수입이 중단된 뒤 국산 멍게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

며칠 전에는 멍게 혈액 속 접착물질인 갈산(gallic acid)을 이용해 시린 이를 치료하는 길이 열렸다는 논문이 나왔다. 멍게는 이 접착물질 덕분에 상처를 몇 시간 안에 회복할 수 있다. 이 물질을 철과 결합해 치아의 상아 세관을 얇게 덮는 게 치료 원리다. 실험 결과 5분 만에 코팅 효과가 나타났다. 단순 코팅뿐만 아니라 타액의 칼슘 성분과 결합해 골(骨) 생성을 돕고 손상된 치아를 복원하는 효과까지 확인됐다고 한다.

이 분야의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710억원 정도. 그동안에는 비싸게 수입한 치료제를 써야 했으니, 이제 멍게가 진짜 노다지 역할을 할 모양이다. 그나저나 신선한 해초에 버무린 멍게비빔밥 생각에 입안 가득 단침이 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