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 발목잡는 '경제의 정치화'를 경계한다
한국 경제가 여러 면에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헬조선’ ‘흙수저’ 등 청년층에서 떠도는 저주 섞인 말들이 나타내주듯이 국민은 불안해하고 또 분노하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중세시대 서양처럼 한국 경제에 대한 ‘마녀사냥 놀음’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청년실업과 빈부격차 확대가 노동이 아니라 자본으로의 부(富)의 쏠림에서 기인한다고 선동한다. 한국 경제의 문제가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상속으로 억만장자가 된 경우가 84%일 정도로 세습자본주의로 변했고, 대기업그룹 2~3세는 창업주가 일군 기업체 간 내부거래로 자본을 축적하고, 중소기업이 개척한 시장과 특허기술을 탈취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강변한다.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마녀’라고 지목하는 셈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그랬던 것처럼 일견 한국 경제의 문제 진단이 명쾌해 보이고 척결의 대상도 분명해 보인다. 이들 주장은 사실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통계에 따르면 세습이 아닌 창업가들이 부를 많이 축적한다는 미국과 일본에서 청년실업과 빈부격차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심하고, 사회적 역동성은 오히려 한국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창조경제의 모범으로 꼽히는 이스라엘도 청년실업률이 한국보다 높고 아동 빈곤율은 무려 28%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중소기업 중심 경제의 전형으로 거론되는 대만은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침체가 깊어지고 있으며 청년실업률도 12~13%에 이른다.

대만의 젊은이들은 상당수가 대학 졸업 후 해외로 떠나겠다고 할 정도로 국가에 대한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현재 ‘헬조선’ 현상이 한국적 특이상황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말해준다. 경제의 글로벌화, 인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 정보통신기술의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세계적 병리현상이란 진단인 것이다.

일부 선동가들은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청년들에게 “분노하라”고 충동질을 해댄다. 한국 경제에 대한 ‘마녀사냥’은 언제나 그럴싸한 정치적 구호로 포장됐다. 대표적인 것이 동반성장론으로, 이는 1970년대 실패한 규제 사례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부활로 나타났다. 경제민주화 주장으로 인해 골목상권은 구조조정과 혁신경쟁의 주체가 아니라 보호의 대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공정성장론은 하청업체에 단가인하 요구도 주저하게 하는 분위기를 가져오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애플처럼 자체 생산을 하지 않는 경쟁자들과의 생존경쟁 속에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주장들이 위험한 이유는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희생양을 찾게 한다는 것이다. 또 무분별한 경제의 정치화와 규제 도입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소위 ‘재벌 원죄론자’들의 처방에 따르다 보면 사회적 대타협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사업의 글로벌화,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성의 급격한 변화 등 근원적인 문제는 등한시한 채 규제만 양산할 공산이 크다.

무분별한 규제와 극단적인 처방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 대가는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그 주변은 경제 발목잡기에 바쁘다. 그 결과 구성원 모두의 대타협과 양보를 통해서도 해결하기 힘든 구조조정은 마냥 뒤로 미뤄지고 있으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헬조선’을 극복하려면 경제에 대한 마녀사냥을 거두고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btlee@business.ka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