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표류한 물리학자,화학자,경제학자 앞에 통조림이 하나 떠밀려 오자 논쟁이 벌어졌다. 물리학자가 돌멩이로 쳐서 따자고 주장하니까 화학자는 불을 피워 가열하는 게 좋겠다고 맞섰다. 가만히 듣고 있던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통조림 따개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 경제학자들이 자주 '가정'을 하는 탓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꼬집는 유머다.

경제학에선 보통 경제주체인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전제한다.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효율적 시장가설'만 해도 그렇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수익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모든 정보가 즉각 시장가격에 반영되는 것으로 여긴다. 금융위기 발생 이전에는 이를 금과옥조로 받아들였으나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인간을 아인슈타인처럼 사고하고,컴퓨터처럼 기억하며,간디처럼 의지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전제한다'(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공저 '넛지')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사실 현실의 인간행동은 모순 투성이다. 적어도 경제이론에서 가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주 합리의 틀에서 벗어난다. 전통 경제학의 허점을 보완하려는 새로운 경제이론이 나오는 이유다.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합리성 이탈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행동경제학,뇌의 활동을 분석해 인간의 의사 결정과정을 이해하려는 신경경제학 등이 그 예다.

이번엔 물리학 이론을 금융시장에 접목하는 '경제물리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소식이다. 금융위기 극복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유진 스탠리 보스턴대 교수 등 몇몇 학자들이 리히터 스케일로 지진을 분석하듯 금융위기도 지진이론 등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경제물리학자들은 지진과 금융위기가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다고 본다. 큰 지진이 일어난 후 여진이 계속되는 점,발생 지점 주변의 환경이 변하는 점 등이 닮은 꼴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지진학자들은 다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듯 통계물리학 방법 등을 원용해 금융위기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시장이 늘 이론보다 한발 앞서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장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서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