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는 일물일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물건은 값도 같아진다는 내용이다. 물건은 같은데 서로 다른 값을 붙인다면 비싸게 파는 사람의 물건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같은 물건의 값은 결국 같아지려는 성질이 있다. 같은 물건의 값이 지속적으로 다르다면 시장에 뭔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근대 경제학의 거장 윌리엄 제번스가 제안한 법칙이지만 사실 뛰어난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같은 물건의 값이 같아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도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가격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정반대의 증거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달아오르고 있는 LPG 가격 담합 논쟁이 좋은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LPG 공급업체들이 가격을 담합해서 부당한 이득을 챙겼으니 과징금을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현재까지 공정위가 내놓고 있는 증거는 업체별 LPG 공급가격이 너무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일물일가의 법칙과는 대조적으로 가격이 같다는 사실이 경쟁의 증거가 아니라 담합의 증거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들은 다른 말로 항변을 하고 있다. LPG라는 제품의 품질이 업체별로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가격이 같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같은 제품의 가격이 동일해지는 현상은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생겨난다.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곳엘 가보면 이 말의 뜻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 곳의 횟감 상인들은 촘촘히 붙어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매일 값이 변하기 때문에 생선 값을 담합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횟감의 가격은 가게마다 거의 비슷하다. 생각해 보면 다른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손님들이 이 가게 저 가게를 다니면서 값을 비교하는 데 어떤 상인이 독불장군처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런 가게는 손님을 잃고 금방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시장 상인들도 서로 눈치를 봐가면서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다. 담합이 아니라 경쟁이 횟감의 가격을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LPG 시장 역시 이와 비슷한 성질이 있다. 업체들의 주장을 빌리자면 LPG의 품질은 업체마다 대동소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업체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면 수산시장에서의 생선가격이 그렇듯이 LPG 가격 역시 같은 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가격이 같아지는 현상은 담합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가격 인하 경쟁을 하지 말고 서로 같은 값을 받자고 입을 맞추는 것이 담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LPG공급자들이 매겨 온 동일한 수준의 가격이 담합의 결과가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본다면 가격의 움직임은 참 얄궂다. 가격이 같아지는 현상은 치열한 경쟁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경쟁이 사라진 담합 상황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공급자의 이윤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가격이 같아지는 반면,후자의 경우에는 이윤을 극대화시켜주는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관찰하는 가격이 과연 낮은 수준에서 같은지 아니면 높은 수준에서 같은지를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 따라서 업체들 간의 가격이 같다는 사실만으로는 그것이 경쟁 때문인지,담합 때문인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담합이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어쩌면 유일한 방법은 담합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업체들이 실제 모임 등을 통해서 가격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했음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비로소 억울하게 담합의 누명을 쓰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