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년도 더 된 대학 시절 얘기다. 어느 날 학교 근처 대폿집에서 친구들하고 어울려 술을 한잔 하고 어김없이 외상을 하기로 했다. 매달 중순께면 집에서 부쳐주는 소위 향토장학금이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늘 하던 대로 친구들 중 하나가 시계를 풀어 맡기려 하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말없이 계산대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 보여주셨는데,거기에는 비슷비슷한 손목 시계 수십 개가 들어 있었다. 거절의 뜻이 담겨 있었지만 인심 좋은 주인은 결국 시계를 받아줬고 그 다음 달 초에 갚았던 기억이 있다. 외상술과 함께 낭만과 추억을 함께 팔았던 이런 풍경을 요즘은 찾기가 쉽지 않다.

외상이 사라진 데에는 신용카드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신용카드 자체가 외상 혹은 신용거래를 편리하게 하고자 만든 것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추억 속의 외상거래를 떠올리면 개인이 감당할 만한 소박한 규모였다.

2000년대 초반 개인의 신용한도를 초과한 과도한 신용카드 사용과 무리한 대출은 결국 신용카드 대란으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카드 대금과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한 이들은 소위 '카드돌려 막기'에 나섰고,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외상 장부는 아니지만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도 '치부책'이라 불리는 장부를 하나씩 갖고 계셨다. 집안 대소사를 기록하고 각종 거래 내역을 기록한 치부책은 일기 역할도 해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가족사가 되기도 했다.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삐뚤삐뚤한 글씨로 맞춤법을 틀리게 쓰거나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은 그림으로 치부책을 작성했다.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줬고 빌렸는지,언제 갚을 예정인지가 꼼꼼히 적혀 있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치부책은 그 자체가 신용관리 도구였지 싶다. 이 치부책으로 신용관리를 하고 미래를 설계해 빠듯한 살림에도 자식들을 가르치고 결혼을 시킬 수 있었다. 돌아가실 때조차 자식들에게 치부책을 넘겨주시면서 남은 빚을 갚아 달라는 유언을 남기는 분도 있었다.

현대는 신용을 통한 금융거래가 일상화됐다. 어머니들의 시절보다 경제는 더 발전하고 세상은 좋아졌는데도 신용의 중요성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은 오히려 퇴보한 것 같은 느낌이다. 영국 옛 증권거래소 빌딩의 벽에는 'Dictum Meum Pactum'이란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나의 말은 나의 문서'란 뜻이다. 신용을 강조하는 이 말이 영국 금융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지만 국가브랜드 파워는 33위라고 한다. 이는 국가 및 개인의 신뢰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신용회복위원회가 시행해 온 신용관리 교육에 치부책에 담긴 알뜰함과 신용관리 노하우를 담아 교재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홍성표 <신용회복위원회위원장 ccrschairman@ccr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