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끝내 병고를 이겨내지 못하고 어제 오후 서거했다. 지난 7월13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폐렴으로 입원한 지 한달 보름 만이다. 일생을 민주화와 인권신장,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와 함께 온 국민과 한마음으로 명복을 빈다. 무엇보다 우리가 당면한 국가적 과제가 산적한 데다 남북관계가 여전히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정치적으로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 지금의 현실이 어느 때보다 그의 경륜과 지도력을 절실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김 전 대통령이 한국 현대정치사에 남긴 족적만으로도 위대한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 역사적인 평가를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의 정치적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波瀾萬丈)이란 말 그대로다. 1961년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래 우리 정치사의 주요 고비 때마다 빠짐없이 그가 함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여년의 야당생활을 하면서 납치,테러,사형선고,투옥,망명,가택연금 등 누구보다도 굴곡이 심한 정치역정을 걸어왔지만 시련에 꺾이지 않고 인동초(忍冬草)처럼 일어나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었다.

유신 이래 5년 반의 투옥,3년여의 망명,6년 반의 가택연금이 말해 주듯,1973년 8월 일본에서 반유신운동을 펼치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서울로 압송된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1979년 10 · 26사태로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80년 2월 사면복권됐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그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빌미로 당시 신군부가 주도한 계엄사령부 군법회의에서 '김대중 내란 음모죄'로 81년 사형선고까지 받는 등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런 일관된 민주화에의 집념이 가져온 성과인 1987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함께 사면복권된 그가 결국 97년 12월 대선에서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는 우리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일대 '사건'이자,대한민국 민주화의 완성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란 국정지표를 내세워 5년 재임기간 동안 DJ노믹스로 불리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복지확충의 정책모델 정립에 주력하면서 어느 지도자보다 분배에 치중했다. 산업화로만 달려왔던 과거의 시대적 유산인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자,사회통합을 통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 기조였다. 특히 '준비된 대통령'이란 평가에 걸맞은 철저한 대책 수립과 정책기조의 선택으로 1997년 말 우리 경제를 거의 파산지경까지 몰고 갔던 외환위기를 단기간내에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IT산업 붐을 일으켜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하고 경제를 정상화시킨 것은 그의 최대 치적이라고 할 만하다.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처음 성사시키고,햇볕정책을 통해 '6 · 15 선언'을 이끌어낸 것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성과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룩한 공로로 2000년 10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 또한 민주화와 남북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친 그의 기념비적인 업적을 입증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물론 그의 정치역정 동안 남겨진 그늘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화는 완성했지만,정당의 지지기반이 지역별로 확연히 분화되고 정치권의 이념적 대립이 더욱 심화됨으로써 여전히 갈등과 분열의 정치문화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가 추구했던 남북관계 개선정책은 오히려 퍼주기 논란만 불러 일으키고,지금은 오히려 북의 끊임없는 핵도발로 인해 여전히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그가 품었던 열망과 필생의 과제로 삼았던 가치는 미완(未完)인 상태로 남은 국민통합과 남북화해임에 의심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또한 분열과 갈등,대립을 극복하고 선진 한국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유지(遺志)임에 틀림없다. 그 남겨진 임무를 완성하는 일은 바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과 정치인,미래 세대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몫임을 우리 모두 자각해야 한다. 그 점 다시 일깨워준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거듭 빌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