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워릭대의 연구진이 80개국 200여만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을 조사했다. 대부분 어린 시절 행복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행복감이 떨어져 40대에 가장 불행하다고 느꼈다. 특히 44세 전후에 불행한 느낌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답했다. 행복감은 50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높아져 70대가 되면 20대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70대에 행복감이 높아지는 이유가 재미있다. 동년배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남아 있는 생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복감은 이렇게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가 행복감과 별 관계가 없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국내 한 여론조사기관이 2000년대 초 '당신과 대통령 중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더니 79.5%가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당시 대통령이 아들 문제로 속앓이를 하던 게 조사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지위가 행복과 직결된다고 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많이 벌기를 원하는 돈은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에드 디너 교수가 2004년 포브스 선정 미국 400대 부호와 인터뷰한 내용을 계량화해 보니 평균 행복지수가 7점 만점에 5.8이었다고 한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족이나 케냐 원주민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돈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란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최근 발표한 '행복지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삶의 만족도,기대수명,환경 등을 기준으로 143개국을 조사한 결과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코스타리카였다. 인구 500여만명인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6580달러로 낮은 편이지만 삶의 만족도가 조사대상국 중 최고,기대수명은 두 번째였다. 도미니카(2위) 자메이카(3위) 등 중남미권이 상위권에 포진한 반면 독일(51위) 일본(75위) 미국(114위) 등은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은 68위다.

행복지수는 평가 기준을 어떻게 정하냐에 따라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물질적 조건도 중요한 요소지만 마음의 평온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고 행복 이외의 뭔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위치에 있든 욕심을 내지 말고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게 행복감을 끌어올리는 길이란 뜻이 아닐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