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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설사 하청업체인 A사 대표 정모(46)씨는 요즘 들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15년간 경영해오던 회사인데 최근 운용 자금조차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원 40명을 먹여 살리려면 한해 30억 원의 공사는 수주해야 되지만 상반기까지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이 회사는 기술ㆍ영업력이 탁월하고 동종업체 대비 수익성도 높다. 따라서 꾸준한 매출 신장을 달성하면서 외형상으론 남부러울 것 없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내수시장이 침체되면서 신규 공사 수주도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고 외상 결제도 모두 연기됐다.

은행에서라도 돈을 빌리려 했던 정 대표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0년 넘게 거래해왔던 주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이 더 이상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점이다.

소위 '우량기업'으로 꼽혔지만 은행은 "상황이 안 좋으니 좀 더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정 대표는 "정부가 수차례 돈을 푼다고 했는데 정작 어디서도 구경을 할 수 없다"며 "흑자부도라는 말이 왜 생기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 고용의 90% 안팎을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1ㆍ4분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달성했다고 자랑하고, 주요 대기업들은 예상 밖의 높은 실적을 냈지만 그뿐이다. 온기는 아랫목에서만 돌 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냉골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모델 정착'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확대'라는 정부 약속은 덧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정부가 올 들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투입한 돈은 지난달까지 24조원. 하지만 제조업 및 중소 건설업체들은 '돈 맛' 본지 오래다. 공사대금 받기가 힘들어지면서 주로 하청업체들인 전문건설업체의 부도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나 높아졌다.

제조업의 노동생산성도 2분기 연속 추락했다. 지식경제부, 한국생산성본부는 최근 '제조업 노동생산성 동향' 보고서를 통해 올 1~3월 제조업 노동생산성지수가 112.6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 123.3에 비해 8.7%P나 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해 4분기 -11.5%에 이어 2분기 연속 하락한 것이다. 2분기 연속 감소는 2001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오랜 불황에 지친 중소기업들은 이제 '희망'의 자리에 '절망'과 '체념'을 채워 넣는 일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도 잘 나가는 중소기업은 분명히 있다. 총체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남과 다른 생각'과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절호의 기회를 최악의 타이밍에서 찾아낸다.

작지만 강한 기업들에게 공통된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도 한 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DNA를 바꾸고, 그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 더 많은 뇌세포를 가동한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중소기업'들은 외부환경에 자비를 구하지 않는다. 배고픈 공룡이나 싸늘한 빙하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고 오는 법. 현재의 위기국면을 재도약의 기회로 활용해 미래를 일궈나가는 기업들이 있다.

자사만이 보유한 경영자원과 기술ㆍ능력, 장래의 시장 니즈 등을 정밀하게 분석ㆍ융합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혁신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핵심역량이 있는 사업으로 다각화를 추진하기도 하고 필요할 경우 전혀 관계없는 분야로 인수ㆍ합병(M&A)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다만 미래 해당분야 고객과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공통적으로 '앞선 시각으로 핵심기술과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경영의 예외 없는 성공법칙을 알려준다.

미래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값진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산업 현장의 '숨겨진 영웅'들, 그들의 열정이 있기에 산업한국의 미래는 밝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