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연 매출 2000억원,평균 2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중견 이동통신기기업체인 A사는 지난해 미국의 대형 이동통신회사인 S사와 공동으로 와이브로 관련 통신장비를 개발하기로 했으나 현재 관련 연구 · 개발(R&D) 계획이 전면 보류된 상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판매 부진과 키코 손실 200억원을 메우기 위해 30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도저히 R&D를 지속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G사장은 "신규 장비가 개발될 경우 연간 500억원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자금이 부족한 데다 미국 측의 구매 여부가 불확실해 투자를 중단했다"며 "동종 다른 기업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 당분간 국내 이동통신기술 개발이 정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례2.금속정밀가공기계 업체로 연매출 500억원 수준인 B사는 3년 전 자회사를 설립,태양전지에 사용되는 염료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발생한 키코 손실로 비축해놓은 현금 70억원을 모두 날렸고 은행에서 추가 대출도 어렵게 되자 염료 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의 C전무는 "올해는 기존 제품 판매에만 집중해야 할 처지"라며 "정부가 정책자금 지원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그간 진행해 온 연구개발 사업을 중단하거나 이미 수립된 계획실행을 잇달아 연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미래 성장동력인 기업의 R&D 투자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20일 관세청에 따르면 2008년 '산업연구용 감면대상 물품' 수입실적은 4억5729만달러로 2007년(4억9720만달러)보다 약 8%(4000만달러)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용 감면대상 물품이란 기획재정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매년 기업 연구소 및 연구전담 부서의 수요조사를 통해 관세를 깎아주기로 지정한 연구개발용 장비(2008년 255개)로 고온고압시험기,수소발생장치,가스분석기 등 기업의 R&D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기자재들이다.

2006년 수입실적이 전년보다 소폭 감소한 적이 있었지만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던 연구용 장비 수입이 이같이 크게 줄어든 것은 감면 근거를 명시한 관세법 90조가 개정된 2001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작년 하반기 중 수입실적은 2억752만달러로 상반기(2억4977만달러)보다 17%나 줄어들었다.

급격히 상승한 원 · 달러 환율도 R&D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한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원 · 달러 환율이 948원이던 2007년 말 120만달러에 '집속이온빔'을 들여오기로 계약했지만,장비를 인수한 작년 8월까지 환율이 계속 올라 1억2000만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이 연구원은 올해 지급받을 연구비를 미리 끌어와 손실을 메우기로 결정했다.

홍은선 중소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R&D 투자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가 정책자금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올해 중소기업청에 배정된 4870억원의 중기 R&D 자금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민선 산업기술진흥협회 전임연구원은 "기업의 R&D 투자 감소는 결국 관련 산업의 정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국가의 성장동력과 직결된 만큼 기업들의 R&D 활성화를 위해 '이공계 연구인력 고용증대 특별세액공제제도' 등을 신설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김범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경제위기시 R&D 투자부터 줄이는 것은 R&D에 따른 성과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투자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적인 R&D 계획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경남/임기훈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