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집중… '거침없는 화법'으로 국내경제 경고

이건희 삼성 회장(65)은 누가 뭐래도 한국 재계의 수장(首長)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경제계의 관심사요 언론의 추적대상이다.

지난 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렸던 '투명사회협약 대국민 보고대회'에서도 이 회장은 단연 주목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수백여명의 지도층 인사들이 참석했지만 취재진들이 가장 많이 몰린 인물은 이 회장이었다.

그리고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에는 큰 혼란을 맞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잇따라 관련 논평을 내며 공감을 표시했고 주요 신문들도 사설을 통해 이 회장이 던진 경고의 의미를 되새겼다.

하지만 이날 이 회장의 발언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기자들을 만나 여러 현안들을 얘기하던 도중에 불쑥 나온 것이었다.

정작 당황한 쪽은 그룹 홍보팀. 일개 기업총수로서 발언 수위가 너무 센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평소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기탄없이 밝히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가끔 의도되지 않은 '설화(舌禍)'를 입을 때도 있다.

1995년 4월 이른바 '베이징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당시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나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며 직설적으로 정치권을 공격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삼성이 청와대에 사실상 '사죄단'을 보내고 나서야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그 후로 이 회장이 기자들과 대면하는 일은 사라졌다.

이 회장의 거침없는 화법을 말릴 수 없다고 판단한 홍보팀이 언론과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나선 것. 따라서 1995년 이후 어떤 언론도 이 회장과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글로벌 일류기업으로도 우뚝 선 삼성의 최고경영자가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묘한 상황이 이어져온 것이다.

이런 상태로 10여년의 세월이 흐르자 이 회장은 '침묵과 은둔의 경영자'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성 홍보팀이 이 회장에 대한 홍보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의 경영방침 구현에 부합되거나 국익신장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면 이 회장의 근황을 적극 알린다.

예를 들어 해외사업장을 방문하거나 국내외 IT(정보기술) 전문가그룹들을 면담하는 등 글로벌 일류기업이나 창조경영 구현과 관련된 비즈니스 활동은 단골 홍보메뉴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밴플리트상 수상을 위해 미국으로 간 뒤 런던 두바이 요코하마 등을 방문하면서 창조경영과 혁신을 주문한 바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벌이는 스포츠 외교활동도 자주 소개된다.

이 회장은 다음달 23일부터 5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주관의 '스포츠 어코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 방문은 2001년 10월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주룽지 당시 총리를 면담한 이후 5년7개월 만에 처음으로 이 회장은 이 기회를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에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삼성이 외부에 알리고자 하는 이 회장의 이미지는 세계 일류기업의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경영에 매진하면서 스포츠 외교와 사회공헌 등과 같은 공익 창달에도 앞장서는 기업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계열사 단위로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자 장수 최고경영자(CEO)인 윤종용 부회장(63)을 앞세워 기업 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윤 부회장은 소탈한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환갑이 넘어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음악과 미술에도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회사가 추구하는 글로벌 감각과 소프트 파워의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다.

연초부터 보장자산확대 캠페인으로 생명보험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삼성생명도 이수창 사장(58)의 열정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기존 생보시장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만큼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시작된 것. 따라서 도전과 개척정신이 성패를 가늠하게 된다.

삼성생명 홍보팀은 이 사장의 스타일이 회사의 전략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얘기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