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귀국 이후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대외 활동을 재개했다. 27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4일 삼성그룹 영빈관인 한남동 승지원에서 방한 중인 미국 코닝사의 제임스 호튼 회장과 만찬을 갖고 양사 간 기술협력 등을 논의했다. 이 회장이 대외 경영활동을 재개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7개월 만이다. 이 회장은 연초 일본에서 다친 발목이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튼 회장을 맞이했다. 공식적으로 코닝사의 한국 법인인 한국코닝의 사무실 확장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만찬에는 이윤우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송용로 삼성코닝 사장,이석재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등 삼성측 경영진들과 코닝의 전문경영인인 웬델 윅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호튼 회장과 디스플레이 및 첨단 소재 분야에서의 기술제휴 등 양사 간 협력증진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과 호튼 회장이 워낙 절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민감한 경영현안에 대한 얘기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합작사 현황에 대한 논의와 이 회장의 건강 등을 주제로 얘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호튼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 때부터 친분을 쌓아온 오랜 친구 사이다. 두 사람은 1973년 삼성그룹과 코닝사의 합작법인인 삼성코닝을 설립한 이후 정례적으로 만나 경영현안에 대해 논의해왔다. 실제로 삼성과 코닝은 1995년에도 삼성코닝정밀유리를 합작형태로 설립한 데 이어 2003년엔 양사 공동으로 디스플레이 분야의 '신규사업 발굴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호튼 회장은 당초 지난해 11월께 이 회장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X파일(안기부 불법도청사건)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 이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함에 따라 성사되지 못했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호튼 회장과의 만찬을 계기로 그동안 미뤄왔던 외부인사와의 만남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의 귀국 이후 8000억원의 사재 헌납과 옛 구조조정본부 조직개편 등의 조치가 나오면서 지난해 기승을 부렸던 '삼성공화국론'이 수그러들고 그룹 전반에 안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지난 18일 열린 전경련 골프대회 참석자들에게 삼성전자의 최신 휴대폰을 선물한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반증 아니겠느냐"며 "앞으로 건강문제 등이 해결되면 보폭을 더욱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