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기 송인건(宋寅建)은 여성들이 지켜야 할 덕목들을 모아 '계녀서(誡女書)'라는 수양서를 냈다. 조신한 처신을 당부하는 일종의 계율집이다. 음식을 먹는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기록하고 있는데 한 예를 들면 이렇다. "많이 잡수기를 권하며,밥을 숟가락으로 뭉치지 말 것이며,밥을 입밖에 비치지 말고,입안에 밥이 보이지 않게 하며,후루룩 소리나게 국을 마시지 말며…" 여자의 행동거지를 언급한 책들은 이밖에도 많았다.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는 3권으로 된 교훈서를 썼고,해평 윤씨는 부덕을 강조하는 수필식의 필사본을 남겼다. 말이 수양서 교훈서이지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옥죄는 대목이 수두룩하다.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에게,시집가서는 남편에게,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강요하고,아들을 못 낳거나 시기하거나 말이 많을 경우 여자를 내쫓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칠거지악(七去之惡)도 같은 맥락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완전히 달랐다. 인종 때 서긍(徐兢)이라는 송나라의 사신이 개경에 와서 한달간 머물다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견문록을 보면 남녀관계는 무척이나 자유스러웠던 것 같다. 결혼전의 남녀관계는 허물이 없었으며 의관을 벗고 강에서 함께 목욕을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주자학이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남존여비사상이 퍼졌고 결국 여성은 규방에 유폐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지금 여성의 지위를 과거와 비교할 바는 아니나,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전주기전여자대학은 여성들의 원활한 사회진출을 위해 '전통문화 규수학과'를 신설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 학과에서는 자수 바느질 등 규방공예와 생활 및 언어예절은 물론 정보화기술과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전통과 현대를 접목한 교육으로 비교우위의 여성들을 길러 내겠다는 것이다. 남성과 함께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 대학의 틈새교육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