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잇달아 발표되는 주요 대기업들의 내년도 경영계획이 극히 보수적으로 짜여져 있어 관심을 끈다. 삼성을 비롯 LG SK 현대·기아자동차 등은 내년 매출을 올해보다 5∼10% 늘려 잡기는 했으나 설비투자는 올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수익 위주의 내실경영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하반기 이후 경기회복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국내 연구기관들의 예측을 염두에 둔다면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 엔화 불안 등 극히 불투명한 세계경제 여건을 감안해 볼 때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면서도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리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외국의 유수기업에 맞설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미래유망사업 발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확충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따라서 이같은 기업들의 내실위주 경영전략은 바람직한 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잔뜩 움츠린 경영계획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성장둔화와 고용감소에 직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내실 위주의 경영전략이 축소균형으로 이어져 소비위축과 불경기의 악순환을 초래한다면 이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특히 설비투자를 줄인다면 성장잠재력의 약화로 자칫 세계경기가 호전되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기업에 대해 무작정 투자를 독려할 일만은 아니어서 이는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매출계획을 낮춰 잡고 투자를 줄이겠다는 기업들의 보수적 경영전략 자체가 내년 경제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다를바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경기부양대책을 좀더 과감히 구사할 필요가 있다. 재정의 조기집행과 같은 조령모개식 미봉책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마인드를 고취시킬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국내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인다 해서 일각에서 지나친 경기부양책에 대한 경계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참으로 성급하고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실물경제의 현실을 외면한채 거시지표 몇가지의 미세한 움직임을 근거로 섣불리 판단하다 보면 경기회복의 실마리 마저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기업들의 내실경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적절한 경기대책과 기업의욕의 고취 등 정부의 기반조성이 무엇보다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