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4년전인 1997년 11월21일 오후 10시. 불과 이틀전에 경제팀 수장으로 임명된 임창열 경제부총리(현 경기도지사)는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 및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일이자 경제 주권을 뺏긴 국치일(國恥日)로까지 얘기되는 바로 그 날. 정부는 이 발표 이후 IMF로부터 모두 1백95억달러를 빌려와 '없는 집 제삿날'처럼 돌아오는 민간 및 공공부문의 외채를 상환할 수 있었고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 정부는 국정 전반에 걸쳐 IMF의 업무 감독과 지시를 받아야 했다. 구조조정의 서슬 퍼런 칼날이 우리 사회 전반에 몰아치면서 수많은 기업과 금융회사가 문을 닫았고 헤아리기 힘든 규모의 실직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4년이 지났다. 그사이 IMF 관리체제를 졸업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경기는 길게 드러누워 있다. 올해 성장률이 3%에도 못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내년 이후에도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4년 전의 실직과 노숙자 문제는 지금 청년 실업문제로 간판을 바꿔달고 있을 뿐이다.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던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도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엊그제(19일) 국회에서 답변한 대로 만족스런 수준이 아니다. 정부가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이른바 신산업 육성에만 골몰하면서 30년 넘게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전통 제조업의 소외감은 어느 때보다 뿌리 깊은 상황이다. IMF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던 그때처럼 다시금 대통령 선거의 소용돌이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몰아닥칠 조짐이다. IMF 구제금융에서 시작된 '잃어버린 4년'은 정말 4년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장기 불황을 겪는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으로까지 연결될 것인가. 김수언 경제부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