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중소기업제품의 최신동향을 파악하려면 어디를 찾아가는 게 가장 나을까. 그건 일본 도쿄 시부야지역의 생활용품스토어인 '도큐한즈'와 '로프트'를 찾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NHK방송국 아래쪽 5층빌딩에 있는 도큐한즈엔 전세계 1만여개 중소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부문별로 가득 차려져 있다. 공구 건자재 자전거부품 가구 잡화 등 모두 전형적인 중소기업제품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디자인이나 기능면에서 꽤나 앞서 있다. 각 분야에서 참신한 제품이어야 납품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때 이곳엔 한국산 옷걸이가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제품에 다시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3층에서 파는 강렬한 광택의 특수금속으로 된 옷걸이는 도쿄에 있는 나카시오산업에서 만든 것이다. 비행기 기체와 비슷한 합금으로 만든 이 옷걸이는 디자인이 아주 세련되고 가벼워 금방 사고 싶어진다. 패셔너블한 플라스틱 옷걸이는 오사카에 공장을 둔 싱크(SHINK)가 공급하는 것이다. 옷걸이만 일본기업에 자리를 내준 게 아니다. 수도용 플라스틱관도 한때 한국업체가 공급했으나 지금은 산에이 KVK 등 40여개 일본업체가 너무나 실용적인 제품을 내놓고 수요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큐한즈 옆에 있는 로프트에서도 한국제품이 밀리기는 마찬가지다. 자전거 잠금장치는 오사카에 있는 DAN인더스트리가 납품하고 조리도구는 니가타에 있는 요시가와가 공급한다. 이들 두개의 생활용품점에서 외국산제품들이 모두 밀리는 건 아니다. 대만과 중국제품은 점점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데 비해 유독 한국산 제품만 사라져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는 한국에선 생활용품 제조업을 너무 등한시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실제 한국에서 옷걸이를 생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이 업종으론 절대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받을 수 없다. 벤처확인을 받을 수도 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옷걸이공장 문을 닫고 인터넷업체로 변신해야 했다. 생활용품 분야에서 한국 중소기업들의 더 큰 문제점은 소비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 만들어 쓰는 DIY(do it yourself)상품분야에 너무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미 수요자의 취향은 DIY에서 더 발전해 완벽한 자기개발상품인 조립용목재 가구부품 특수공구 등 LIM(let it be myself)상품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 인터넷과 정보기술만 최고라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생활용품시장도 인터넷만큼이나 규모가 큰 것이다. 전세계 옷걸이 수요만해도 연간 5백억개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생활용품 시장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