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휘창 < 서울대 교수 / 국제지역원 >

미국 뉴욕 타임스지는 인류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1440년대에 만들어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꼽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금속활자라면 이 보다 먼저 고려시대에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고려 고종(1234)때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했다는 기록이 전하나 현존하지 않고,1377년에 간행된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세계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고려나 중국의 인쇄술에 비해 좀더 진보돼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이동식 금속활자(movable metal type)를 사용했던 것에 비해 중국의 활자는 이동식이었으되 점토나 목재를 사용함으로써 내구성이 좋지 못했다.

고려의 경우 금속을 사용했으나 구텐베르크식의 확실한 이동식 활자가 아니었다.

구텐베르크는 나아가 인쇄에 압축기를 사용하고 기름성분이 있는 잉크를 사용해 인쇄 기술을 높였다.

그러나 생산기술과 같은 요소조건만 좋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조건들이 따라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수요조건을 들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인쇄술의 발전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의 전파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농업 및 산업 혁명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정치나 종교에만 중점을 둬 특정 계층에 국한돼 수요의 크기가 작았다.

유럽의 경우에는 정치·종교적 목적과 더불어 산업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빨리 일반인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었다.

또 유럽에서는 인쇄술 발전에 이어 철도와 증기선 등 교통수단의 발전이 뒤따랐다.

통신 수단의 발전만으로는 지식이나 문화가 다른 곳으로 전파되는 데 한계가 있다.

지식과 정보를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널리 퍼뜨리는데 필요한 관련 산업인 교통수단의 발전이 인쇄술의 발전을 뒷받침해 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럽에서는 이러한 기술발전 및 이용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켰다.

서구사회에서의 인쇄술 발전은 구텐베르크의 이동식 금속활자라는 우수한 요소조건을 기본으로 수요조건,관련산업 및 기업구조가 상호 보완해 주는 총체적 상황의 형성에서 비롯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나 중국의 경우는 요소조건을 조금 충족시켰을 뿐,다른 상황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의사소통수단의 혁명은 인쇄술의 발전에 이어 전신 전화 팩스 ,그리고 현재의 인터넷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느 경우든 이상의 네 가지 조건을 적절히 갖춘 기업 또는 국가가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을 반드시 국내에서만 조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해외에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현재의 인터넷전략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인터넷 관련 생산업자의 경우,처음에 아이디어가 있어 우수한 발명품을 만들었어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요조건 및 관련산업에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기업구조를 효율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많은 벤처기업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경우는 바로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관련 수요자의 경우에도,인터넷이나 전자상거래의 기법만 도입한다면 요소조건을 충족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충족시키지 않으면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분야에서 인터넷을 적극 사용해야 하고 관련분야와 통합시켜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가 인터넷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자신이 실제로 광범위하게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이에 적절한 기업구조를 개편하는 등 총체적 인터넷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 자신은 인터넷을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업구성원에게만 인터넷을 통한 경영합리화를 요구한다면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많은 기업이 컴퓨터 및 인터넷과 관련해 훌륭한 시설을 갖추어 놓고도 별 효과를 못 보는 것은 바로 최고경영자가 인터넷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hcmoon@sia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