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 소설가 ji2598@hitel.net >

취하라고?

무엇에,술에?

2박3일 용맹 정진을 자랑스럽게 신고하는(사실은 속에선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소시민들에게는 백이면 백, 술 말고 또 뭐가 있나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만 있을까.

"늘 취해 있어야 한다... 어깨를 짓눌러 당신을 땅으로 구부리게 하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늘 취해 있어야 한다"

이 시는 "악의 꽃"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취하라"란 시이다.

스물 두살의 나는 이 시를 좔좔 외우며 최루가스 매케한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것도 원어로.

내가 특별히 프랑스어에 뛰어났다거나,시인 기질이 있었다기보다 전공이 프랑스 문학이다 보니 시수업이 필수였고,낭송이 큰 비중을 차지한 관계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에는 데모하랴,청춘사업하랴 이래저래 바쁜 터에 웬 시 낭송? 하며 탐탁치 않아 했으나,어찌된 일인지 요즘 부쩍 그때 꿰 찬 시어들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불쑥불쑥 튀쳐나오곤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이든 시든 미덕이든 당신 뜻대로.다만 취하기만 하라..그러다가 취기가 덜하거나 이미 가셨거든 물어보라..바람에게 시계에게,지나가는 모든 것에게,울부짖는 모든 것에게... 몇 시냐고..."

그러고 보니 초고속 인터넷망이 내 컴퓨터에 깔리기 전 나는 "취하라"는 주절거림을 하지 않았다.

"딱 5분만"하고 들어갔다가 그 길이 50분이 되고,2,3시간 잡아 먹히는 것은 순식간이다.

알콜기가 오른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도망치듯 빠져나오면,그날 마쳐야 할 원고는 진전이 없고,아껴둔 빵 뜯기듯 시간만 탕진한 상태다.

당신은 무엇에 취해 있는가.

그 취기에서 깨어날 때는 몇 시인가.

만약 보들레르가 지금 다시 그 시를 쓴다면 컨텐츠가 달라져도 한참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취할 시간이라고,늘 취해 있어야 한다고,당신 뜻대로 취하라고 외칠까.

아,19세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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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필진이 1일부터 바뀝니다 ]

7~8월 집필은 최준환(화)엔써커뮤니티 사장, 김재홍(수)쌍용화재 사장, 박기석(목)시공테크 사장, 최공웅(금)법무법인 우방 변호사, 소설가 함정임(토)씨가 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