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 (주)코오롱 사장 jhjo@mail.kolon.co.kr >

지난해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바로 옆 도시인 스카츠데일이란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그곳이 열기구 타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라서 새벽 일찍 기구에
열풍을 불어넣고 하늘에 올라 고도 1km 정도를 날며 아래에 있는 선인장이랑
계곡을 구경한 적이 있다.

내려와서 풍선의 재료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나일론66"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은 "섬유"라고 하면 당연히 입는 옷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달나라에 가는 우주선이나 미사일 동체에도 섬유가 쓰인다.

또 사람들이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바퀴, 안전벨트, 엔진에 붙은 V벨트,
의자의 시트커버, 천장 및 트렁크 안 까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온통 섬유가
들어가 있다.

필드에서 즐기는 골프 샤프트가 강철에서 섬유로 바뀐 지는 이미 오래다.

토목공사때 연약한 지반이나 물이 빠져야 하는 곳에도 섬유가 쓰이며
탄광이나 공항에서 석탄이나 사람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바다나 강에서
줄 낚시를 하든 그물로 상업 어업을 하든 모든 재료 또한 섬유다.

그리고 바다나 강에 유류가 쏟아졌을 때 기름 확산을 막고 흡착해 내는 것도
섬유며 인터넷이 통하는 초고속 통신망도 광섬유다.

작금의 주식시장을 보면 코스닥시장은 불이 붙어 소방수가 필요한 지경인데
기존 거래소 주가는 소박맞은 조강지처 신세를 연상시키듯 썰렁한 분위기다.

이미 상당수의 회사가 일반 의류용 섬유의 매출비중을 상당히 줄이고 30%
이상이 위에서 말한 첨단산업용 재료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투자자들
은 일제시대 면방공장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같아 아쉽다.

섬유산업계 또한 세계적 추세인 인터넷과 전자상거래를 전향적으로 수용
함으로써 기회를 선점하고 트렌드를 창출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변혁의 시기에는 기업의 오랜 역사와 전통적인 강점이 오히려 쇠망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상을 빈번히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전통 굴뚝산업들에 대한
전자상거래 확산을 위해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IT를 장착하지 않은 전통산업도, 그리고 전통산업을 무시한 인터넷만을
위한 인터넷산업도 "홀로"는 몰아치고 있는 "글로벌 인터넷 행성 융합과정"에
결코 생존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