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느닷없이 IMF 관리체제라는 한파를 맞고 1년여만에 이를 극복해
낸 과정은 말 그대로 우여곡절이었다.

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면 IMF 드라마는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었다.

금융산업의 취약성과 국제 외환시장의 불안 이전에 한국 경제를 벼랑끝으로
까지 몰고 갔던 주범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실물경제의 취약과 이에 따른 수출 부진이었다.

반도체 등 몇몇 특정산업에 국가경제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해 온 한국은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국제 반도체경기가 급하강하자 맥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경제가 빠르게 소생할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등 주력 산업 시황이
국제적으로 회복된 데 결정적으로 힘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언제 또다시 내리막에 접어들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경제가 몇몇 산업에 의존하는 한 경제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

한국경제가 치열한 경쟁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 돌파구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부품산업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부품산업은 여러 면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발휘할 여건을 갖추고
있다.

종래 완제품 제조업체들이 원가 절감 압력을 받을 때마다 자체기술 개발
노력을 펴기보다는 그 부담을 부품업체들에 고스란히 떠넘긴 결과이다.

그 부담을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생존해 온 한국 부품업계의 가격 경쟁력은
중국 인도네시아 등 후발 개도국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지난 1962년 최초의 근대적 조립 생산을 시작한 이후 근 40년에
걸쳐 기술을 축적해 온 자동차 부품산업의 예에서 보듯, 한국의 부품업계는
후발 개도국들이 넘보기 힘든 품질경쟁력을 확보했다.

한국의 부품산업은 잘만 육성하면 후발 개도국들의 추격이라는 악몽을
떨치고 경제반석 위에 올려 놓는 구세주가 될 수 있다.

부품산업은 조립 산업과 달리 후발국들이 단순한 저임 노동력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부품산업은 철강 및 전자부품 등 일부 원부자재의 조달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자동차 등 완제품의 수출 성과가 제고되고 있는 것도 부품업계가 기술력을
인정받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필자는 유럽본부장 시절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구매 책임자로부터 선진국
완제품 메이커들이 부품을 아웃소싱할 때 따지는 두 가지 전제조건에 대해
들은 바 있다.

그것은 첫째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검증받은 기술력이 있어야 하며
둘째는 자사에서 직접 생산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70% 수준 이하로 납품할
수 있게끔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임자는 그러면서 한국만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존재라고 칭찬했던 기억이 새롭다.

실제로 대만 기업들이 자동차부품의 애프터서비스 시장에는 활발하게
진출하면서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시장 진출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완제품 품질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품질 수준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이처럼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부품산업은 세계적으로 그 규모가
엄청나다.

전기전자 기계금속 자동차 컴퓨터 정보통신 등 5대 부품산업만 따져도
세계 시장 규모가 1조달러를 넘는다.

고작해야 1천5백억달러 정도인 반도체에 비할게 아니다.

일본의 전체 부품시장은 4천억달러에 달하며 유럽은 2천5백억달러가 넘는다.

미국은 자동차 부품시장만도 1천6백억달러를 상회한다.

더구나 부품시장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종래의 경영 합리화에 의한 원가 절감 노력이 한계에
이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기업간 인수 합병에 나서고 있고 그것만으로
도 충분치 않자 부품과 공정의 아웃소싱을 급격히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은 최근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신경영전략의 핵심으로 아웃소싱
을 추구하고 있으며 지난해 미국 GM 계열사들이 6개월여에 걸쳐 장기파업
사태를 벌였던 까닭도 바로 아웃소싱에 대한 하청업체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일본 제조업계도 4~5년전부터 부품의 해외 아웃소싱을 통한 비용 절감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부품산업은 세계적으로 시장 잠재력이
무한하며 실제로도 그 가능성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다.

부품산업은 반도체에 이어 한국 경제를 또한번 비약케 할 황금알의 거위임이
분명해졌다.

우리 부품업계가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경영 합리화를 도모하면서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에 정부 및 유관 기관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결합된다면 뉴밀레니엄
시대의 개막을 맞아 부품산업은 한국의 수출무대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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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법대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구아중동본부장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