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기술 대경쟁 시대"다.

앞으로 세계 질서의 키워드는 테크노 헤게모니다.

기술패권의 장악 여부가 곧 21세기 승자와 패자를 가름한다.

새해 첫 주제로 ''테크노 코리아 2000''을 선언한 한국경제신문은 새로운
테크노 코리아 건설을 위한 비전제시에 앞서 세계의 테크노밸리들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심층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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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젠다와 뉴 패러다임"

새해를 맞은 워싱턴 정가의 "밀레니엄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말이다.

e-젠다는 의회에 계류된 인터넷 등 전자관련 법안(아젠다)을 지칭하는
신조어.

지금도 ''인터넷 소비자보호법안'' 등 상정돼 있는 것만 50개가 넘는다.

일단 e-젠다가 상정되면 곧바로 통과시키는 것이 의회의 관례다.

조금 꾸물거리면 여론이 용납하지 않는다.

법안 토론과정도 다른 의안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반대의견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전자상거래(e-commerce) 등 e로 시작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지원법안에
섣불리 반대했다간 애국심 없는 정치인이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기 십상"
(로버트 에이스 미 국립보건원 국제협력담당관)이라는 것이다.

총기규제 의료보험개혁 등 숱한 의제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공화.민주 양당이지만 e-젠다가 올라오면 순식간에 의기투합한다.

의회의 이런 신 풍속도를 "뉴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이 2000년 새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1991년 4월부터 시작된 지금의 호황주기는 "고성장과 저실업률, 저물가의
공존"이라는 신경제(New Economy)를 탄생시키며 승승장구를 계속하고 있다.

신경제의 원동력이 인터넷 등 첨단 신기술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효과 때문
임은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설이다.

신기술 탄생의 주역은 물론 벤처기업가들을 중심으로한 일선 엔지니어들
이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워싱턴 정가의 행정.법적 지원도 큰 몫을
했다.

작년 한햇동안 미 의회가 통과시킨 e-젠다는 수백개에 달한다.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법인세 3년유예, 하이테크분야 외국인 취업자에 대한
비자요건 완화 등 관련 기업들의 "민원"성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한 법안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하원이 1999년도 회기 폐회 직전에 "전자서명법"을 전격 통과
시키기도 했다.

미국 경제를 "라이벌 없는 세계 최강"의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뉴테크노
혁명 앞에서는 이처럼 워싱턴의 정쟁마저도 멈춰버린다.

미 의회의원들이 의안심의 과정에서 거의 이의를 달지 않는 분야가 또
한가지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예산 배정이다.

신기술에서 앞서가기 위한 국가 차원의 R&D(연구 개발)은 다다익선이라는데
컨센서스가 모여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연방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에 쏟아 부은 R&D 예산은 8백억달러
에 육박한다.

이 자금은 상무부(DOC)와 에너지부(DOE), 국립보건연구원(NIH) 등 정부기관
을 통해 대부분 민간기업과 대학들에 배분됐다.

미국 의회와 정부, 기업과 대학들이 일체가 돼 개발하고 있는 신기술
프로젝트는 굵직한 것들만 꼽아도 수백개에 달한다.

위험부담이 큰 첨단 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ATP(Advanced Technology
Program), 초당 테라비트(1조비트)급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차세대 인터넷(인터넷II) 사업, 유전자정보를 모두 분석해 데이터
베이스로 만드는 게놈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이같은 투자는 미국 전체 R&D 투자의 30% 수준밖에
안된다.

미국과학재단(NSF) 보고서는 1999년 한햇동안 미국에서 R&D에 투자된 자금
이 2천4백7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1997년의 경우 미국의 연구개발비가 전세계 R&D 비용의 절반 가까운 44%를
차지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미국이 "e"자로 시작되는 전자관련 분야에 이어 21세기를 주도할 신기술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명공학이다.

NIH 젠뱅크(유전자은행)의 데니스 벤슨 박사는 "미국이 이 분야세너는
당분간 독점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20세기말 인터넷 혁명을 주도한 미국이 21세기 유전자혁명에서도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 워싱턴=이학영.김태완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