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작을 쌓자 여론이 불을 지폈다"

벤처산업 성장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벤처는 "기테크"여서 분위기를 살려가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와 여론이
호흡을 맞추었다는 것.

벤처산업이 환란의 터널을 빠져 나와 급성장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4분기부터.

"코스닥->벤처기업->벤처캐피털->엔젤" 순으로 생기를 되찾았다.

코스닥이 활성화되자 벤처기업계가 큰 에너지를 받았다.

"관 속에 누워있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듯 했다"고 한 벤처인은 말했다.

쭉정이 기업이 알곡으로 변하면서 여기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은 저절로
살이 올랐다.

지난해 1백17억원의 적자를 냈던 한국기술투자가 올 상반기 2백42억원의
순익을 낸 사례는 상황의 급반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떼돈을 버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이 속출하자 개인투자자(엔젤)들이
벤처시장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한국이 미국 이스라엘 등 벤처 선진국에 비해 가장 뒤떨어졌던 엔젤 부문
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

이들을 겨냥한 벤처상품들도 잇따라 나왔다.

주로 기관 법인들의 투자를 받았던 창투조합이 엔젤 투자유치에 본격
나섰다.

엔젤클럽에 참여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도 늘어갔다.

기업구조조정 전문의 벌처펀드와 뮤추얼펀드형 벤처펀드 등이 새 상품으로
나오면서 1개 펀드에 수백, 수천명이 모여들었다.

<> 여론과 벤처산업 = 재미 성공 벤처기업가인 이종문 암벡스그룹 회장이
한국에서 강연할 때면 으례히 강조하는 말이 있다.

"벤처산업에는 여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벤처도 여론이 키웠다"
는 것이다.

이민화 메디슨 회장,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사장 등 많은 국내 벤처인들
도 종종 "여론이 벤처인들의 사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벤처 열풍 조짐이 보이자 국내 언론은 지난 97년부터 벤처산업을 비중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벤처창업을 북돋웠고 벤처기업인들의 성공사례를 집중 보도했다.

벤처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더욱 고조됐고 언론의 보도열기는 가속화됐다.

일부 잠자던 대학과 연구소가 이같은 분위기 덕분에 눈을 뜨고 깨어나
벤처산실이 됐다.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건설교통부 등 정부 부처들
도 경쟁적으로 벤처육성 시책을 폈다.

<> 급속한 코스닥 활성화 = 코스닥 시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총
거래량이 거래소 시장의 하루치에도 못미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부터 꿈틀대더니 7월까지 성장가도를 달렸다.

풍성한 자금이 증시로 쏠린 데다 정부가 코스닥 벤처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등 활성화조치를 취하자 불이 붙었던 것.

벤처 이론가로 꼽히는 고정석 일신창투 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코스닥의
중요성을 외쳤지만 이렇게 빨리 살아나리라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며
"예상보다 2년 빨리 왔다"고 말했다.

이 바람에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의 각종 지표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 부도가 거의 없는 벤처업계 = 벤처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벤처
기업들의 부도율은 1% 미만이다.

부도가 거의 없는 것은 한국의 벤처특성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이 아니라 "로리스크 로리턴(저위험 저수익)"이기 때문.

여기다 각종 벤처자금이 넘쳐 흐르니 웬만한 벤처기업들은 자금에 궁색
하지 않다.

심지어 한글과컴퓨터 두인전자 서울시스템 등 부도나거나 좌초에 직면했던
다수 중견 벤처기업들이 벤처자금 지원에 힘입어 탄탄한 회사로 재도약하게
됐다.

최근 코스닥 사상 최고 공모가(액면가의 66배)를 기록한 로커스 역시
지난해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으나 올 1월 자딘플레밍일렉트라사로부터
1천6백만달러를 유치하면서 급성장세를 타게 됐다.

<> 기반 다지며 성장해야 =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의 안철수 대표가 최근
"현재와 같은 거품상태가 지속되면 멀지않아 벤처기업의 95%가 망할 것"
이라고 경고해 주목을 끌었다.

아이템도 없이 코스닥 돈놀이를 하는 벤처기업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적절한 투자 대상이 적다보니 벤처캐피털이 수십배 프리미엄을 주고
투자하는 사례가 빈발한다는 지적이다.

안 소장의 지적처럼 사업을 열심히 해 경영실적을 개선하기보다는 주식
공모 또는 증자를 통해 목돈을 모아 재테크에 열중하는 엉터리 벤처기업이
느는 것은 문제다.

인터넷이나 정보통신으로 변장하기만 하면 회사가치가 금방 올라가는
풍조부터 빨리 없어져야 한다.

결국 정부가 한시적으로 벤처정책을 이끌어가되 자금보다는 창업기반 확충
등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아울러 벤처인들 스스로도 기업윤리를 인식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