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윤종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경제실장 yjwang@kiep.kiep.go.kr >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 2천5백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한 미국이 마침내 보호주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한국 자동차 수입시장에 대해 슈퍼 301조를 적용한 이후 그 해
말에 종결했으나 호시탐탐 부활을 준비해 왔던 미국은 더 이상 무역수지
적자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같다.

드디어 일방적 무역제재 조치를 합법화하는 슈퍼 301조란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유럽연합(EU)과 바나나 분쟁으로 통상마찰이 심화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의 위상이 흔들리자, 미국은 다자협상방식보다는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양자
방식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계산한 것같다.

클린턴 행정부 레임덕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자유무역주의를 표방해온 클린턴 행정부가 의회의 압력에 밀려 보호무역주의
로 선회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 무역대표부는 슈퍼 301조의 부활과 관련해 지난 80년대말 일본과의 통상
현안 해소와 97년 한국의 자동차 수입시장개방에서 거둔 성과를 높히 평가
하고 있다.

즉 통상현안을 해결함에 있어 끊임없는 이해와 설득, 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다자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무역제재란 직접적인 위협수단을 무기로 힘의
논리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슈퍼 301조 발동은 형식요건으로는 일정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 발동 대상이 되는 교역상대국의 무역관행이 누가봐도 불공정해야 한다.

따라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무역관행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그리 염려할
사항이 아니다.

문제는 불공정성에 대한 판단을 미국이 하는 이상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더욱이 슈퍼 301조를 견제할 만한 역보복조치를 구비하지 못한 나라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WTO의 위상제고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상황에서 슈퍼 301조 부활은
향후 WTO의 분쟁해결절차의 권위를 크게 훼손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슈퍼 301조의 칼날을 피하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대미 무역수지 적자국이었던 한국은 지난해 무역
수지 흑자국으로 전환됐다.

특히 한국산 수입상품에 대해서는 반덤핑 조치를 통해 수입규제를 강화하겠
다는 움직임이 미국내에서 심상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 우려감이
커진다.

철강의 경우 사실상 한국은 수출자율 규제를 통해 수입규제를 회피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의약품 소고기 등 미국 수출업자가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통상현안에
대해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는 3월 31일에 국별로 불공정 무역장벽에 관한 조사보고서가 발표되고,
한국이 불공정 무역관행 대상국으로 지정되고 나면 거의 예외없이 슈퍼 301조
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조치로 대미수출에 당장 비상이 걸릴 정도로 파장이 즉각적
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자동차협상과정에서 슈퍼301조를 경험한데다 IMF관리체제이후
"적극개방" 쪽으로 대외경제정책의 기조를 정했기때문이다.

한국은 작년부터 투자협정을 비롯해 한.미 통상관계를 순탄하게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을 경주해왔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향후 상황과 일본 유럽 등과의 통상관계에 따라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미 통상기류는 급변할수 있다.

이번에 슈퍼 301조와 함께 "타이틀 7(Title VII)"로 불리는 정부조달
관행조항의 부활도 한국엔 큰 부담이 된다.

미국은 인천 신공항건설에 미국 건설업자의 참여가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불만을 제기해왔다.

이번 슈퍼 301조 부활은 브라질 사태 이후 세계경제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경제에 어려움을 주는 통상문제를 힘으로 밀어 붙여 해결
하겠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미국이 작년 세차례의 금리인하 조치로 세계경제에 활력소를 불러 일으킨
것과는 대조적인 면모다.

유럽연합과 일본 등 미국과 대등한 통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와 뜻을
모아 미국의 보호주의 부활에 강력히 대응해 나가되 안으로 불공정 무역관행
은 없는지 다시 한번 주의를 살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