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경제 붕괴 이후 장기불황의 고통을 절감하고 있는 일본의 소비자들.

일본이 자랑하던 완전고용 신화도 생활대국 이상도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그 대신 전례없는 실업률 증가와 소비위축, 미래에 대한 불안감 확산이
나타나고 있다.

IMF 한파를 겪고 있는 우리와는 동병상련의 입장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이렇듯 나빠진 경제사정으로 소비자가 내핍생활로 돌아서면서 고가품 대신
저가품이나 할인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기업측에서도 대형할인점을 필두로 현대적 유통구조의 도입, 저가형 PB
상품이나 가격효용을 높인 상품의 개발, 가격할인과 박리다매식 마케팅
전략을 추구하면서 이른바 가격파괴라고 불리는 저가격 트렌드가 일본
전역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 새로운 흐름은 소비자의 태도를 합리적으로 변모시키는데 크게 기여
하였다.

예컨대 저가 및 할인제품을 물색하는 "가격지향", 수리품과 DIY제품 수요
증가와 같은 "실속지향", 필요없는 지출을 삭감하는 "계획구매",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실용지향"이라는 4가지가 현재 일본
소비자를 특징짓는 키워드다.

이러한 합리적 소비 태도로 인해 유행은 점점 소형화하고 히트상품도
소규모화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히트상품을 보면 삐삐, 휴대전화, 프린트클럽, 다마곳치,
포켓몬스터와 같이 오직 청소년층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부 상품들에
국한되어 있다.

어쨌든 장기 트렌드 측면에서 볼때 현재 일본인의 소비체질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즉 지난날 일본인이 동경해 왔던 미국형 소비양식에서 벗어나 일본 특유의
소비양식을 구축해 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미국형 소비양식은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물질위주의 반환경적인데 반해
현재 일본에서 싹트고 있는 합리적 소비생활 무드 속에는 정신지향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 업계에서는 향후 상품개발의 방향을 다음의 다섯가지 측면
에서 검토하고 있다.

첫째 장기사용.애착형 상품.

고급만년필, 업그레이드 기능이 부착된 가전제품, 수선(repair) 개량
(reform) 재사용(recycle)을 의미하는 3R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둘째 참가형 상품.

수제맥주, 개인여행상품, 자가도예 등 참가제작상품, 오토캠프, 반수제요리
제품 등 소비자의 참가 창조 편집 변환이 가능한 상품 수요가 증가한다.

셋째 사용효용 중시형 상품.

임대주택 렌털상품 경승용차 등 현시욕이 아닌 유용성이나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상품이 호조를 보인다.

넷째 환경친화적 상품.

자연세제, 소멸성 플라스틱, 분해가 용이한 가전제품, 간이포장을 채택한
상품, 재활용 상품 및 서비스 등 소비자의 환경의식이 높아지게 된다.

다섯째 정신지향 상품.

흥미 위주의 첨단성과 다품종화 물결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계속 인기를
얻겠지만 기성세대는 최고급 수제손목시계, 고급피혁제품, 고급도자기처럼
전통이나 숙련미를 중시하는 초부가가치 상품에 더욱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상의 전망은 일본적 상황에서 도출된 것이긴 하지만 소비생활의 대변혁기
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참고할 점이 많은게 사실이다.

박영배 < 신한종합연구소 책임연구원 shinhanbank.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