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대체거래소(ATS) 운영방안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대체거래소(ATS) 운영방안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내년 상반기부터는 투자자들이 평일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투자자들이 주식 주문을 집행할 거래소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된다. 주식 매매·중개 기능을 갖춘 대체거래소(ATS·다자간매매체결회사) 업체 넥스트레이드가 이르면 내년 3월 출범할 예정이라서다. ATS가 본격 도입되면 1956년부터 70여년 가까이 이어진 한국거래소(KRX)의 증권 거래 독점 체제가 깨진다.

'복수 거래소 체제' 생긴다…ATS, 코스피·코스닥 800여 종목 거래

9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넥스트레이드 등 유관기관은 서울 여의도동 금투협에서 ATS 운영방안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넥스트레이드는 금투협과 주요 증권사 등 출자기관 34곳이 모여 2022년 11월 세운 ATS 준비법인이다. 작년 7월 예비인가를 받아 대체거래소를 준비하고 있다.

당국은 올 하반기 내에 관련 자본법과 시행령·규정 등을 개정하는 게 목표다. 넥스트레이드는 올 4분기 본인가를 신청해 내년 상반기 출범한다.

금융당국은 ATS를 통해 유동성이 높은 800여개 코스피·코스닥 종목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현행 제도를 개선해 ATS에서 상장 ETF·ETN 거래도 허용할 방침이다. 당국이 제도권 편입을 추진하고 있는 조각투자 형태 투자계약증권과 토큰증권(ST) 등도 ATS를 통해 거래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전망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우리 증권시장이 회외 주요국처럼 복수시장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며 "증시 인프라의 건전한 경쟁이 투자자의 편익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오후 6시 퇴근 후에도 주식 투자 가능

ATS가 정식 출범하면서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크게 달라질 점은 주식 거래시간이다. 당국은 ATS의 거래 시간을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로 잡았다. 직장인 투자자들도 퇴근시간 이후 국내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ATS는 오전 8~9시를 개장전시장(프리마켓), 오후 3시30분~8시를 애프터마켓으로 운영한다. 거래시간이 기존에 비해 5시간30분 늘어나는 셈이다. KRX의 단일가매매 시간인 오전 8시30분~오전 9시, 오후 3시20분~오후3시30분에도 ATS를 통하면 즉시 매매를 체결할 수 있다.

단 정규장 개장 전 10분간은 ATS 프리마켓을 일시 중단해 KRX 시가 예상체결가만 표출한다. 시세조종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KRX 종가 단일가매매시간에도 ATS거래를 5분간 일시 중단한다. KRX 종가가 펀드 기준가격 산출 등에 활용되는 만큼 종가에 모든 시장 유동성을 집중한다는 이유에서다. 프리·애프터마켓은 유동성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지정가 호가를 통해서만 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다.

거래 시간이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이 공매도 과열종목, 투자자 유의 종목, 관리종목 지정 등을 알 수 있는 시각은 기존 대비 다소 늦어질 전망이다. 당국은 다음날 KRX와 ATS에 적용되는 시장조치에 대해선 ATS 거래 종료 이후인 오후 8시에 공표하기로 했다. 공시 접수시간은 현행인 오전7시30분~오후6시로 유지한다.

'중간가호가' 도입…경쟁 KRX에도 적용

ATS가 출범하면 기존엔 독점 구조였던 증권거래소 시장이 경쟁 구조로 재편되면서 개선에 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새로운 호가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날 세미나에선 ATS와 KRX 모두에 적용될 예정인 새 호가 유형 두 가지가 공개됐다. KRX는 ATS 출범 시기에 맞춰 새 호가 유형을 도입할 계획이다.

ATS와 KRX는 최우선 매도·매수 호가의 중간가격에 주문이 체결되고, 가격이 자동조정되는 중간가호가 방식을 도입한다. 예컨대 기관이 삼성전자 1000주에 대한 지정가 매도 주문을 7만9800원에 냈고, 투자자들의 최우선 매수호가가 7만9700원이라면 중간값인 7만9750원에 주문이 체결되는 식이다. 최우선 매도호가가 7만9780원으로 내려간다면 중간가호가는 7만9740원으로 자동 조정된다.

각 거래소는 중간가호가의 주문수량과 예상중간가격을 표출해 투자자에게 호가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당국 등은 중간가호가 유형이 도입되면 매매체결 가능성이 높으면서 가격이 유리하도록 유동적으로 조정되는 호가를 낼 수 있고, 호가 단위를 세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톱지정가호가 유형도 도입된다. 시장가격이 투자자가 미리 정해놓은 가격 수준에 도달하면 지정가로 주문이 나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현재 주가가 1만2000원인 주식에 대해 '시장 가격이 1만3000원에 도달할 경우 1만3500원에 지정가로 매수한다'는 주문을 낼 수 있다. 시장 가격의 변화와 연동되는 호가 유형이라 손절매, 분할매수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ATS, 수수료 인하…속도 제고도 나서

ATS는 매매체결 수수료를 KRX 대비 20~40% 인하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가 주문 체결에 따라 투자자에게 받는 수수료도 시장별 체결 비용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 거래소간 수수료 경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대규모 거래를 하지 않는 일반투자자들이 수수료 경쟁에 따른 효용을 체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금투업계의 중론이다. KRX가 주식 거래에 대해 '사실상 제로' 수준인 0.0027%(ETF·ETN은 0.0032%)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어서다.

매매체결속도 개선에도 나선다. 이날 김진국 넥스트레이드 전무는 "신규 전산설비를 구축하고, 증권사 인프라 지원 등을 통해 기존 대비 주문 전송과 매매 체결에 드는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초당 4만건까지 거래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ATS서 블록딜, 공매도도 가능…KRX 적용 규제 동일 적용

ATS를 통해 대량매매(블록딜)·바스켓매매도 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날 코스피·코스닥 전 종목에 대해 ATS에서의 대량·바스켓매매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량매매는 개별 종목 5000만원어치 이상을 거래하는 경우, 바스켓매매는 코스닥 기준 5종목·2억원어치 이상을 거래하는 경우에 대해 적용한다. 단 ATS에서 특수관계인간 블록딜이나 바스켓매매를 할 경우 KRX와는 달리 양도차익에 대한 증여세가 붙는다.

차입 공매도도 허용된다. KRX와 같은 시간대인 정규장에서만 공매도를 칠 수 있다. 업틱룰, 공매도과열종목 지정, 공매도 주문 표시 등에 대해선 KRX와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다만 ATS의 업틱룰은 KRX가 아니라 ATS에서의 직전체결가를 기준으로 적용한다.

ATS는 KRX의 주식 매매·중개 기능만 대체할 수 있다. 정규 거래소와 달리 상장 심사, 청산, 시장감시 등 기능은 없다는 얘기다. 이때문에 거래정지·써킷브레이커·사이드카 등 시장안정조치는 KRX를 기준으로 하고, KRX의 결정을 ATS에 실시간 적용한다. ATS의 시장감시·청산도 KRX가 수행한다.

가격변동폭과(종가 기준 ±30%) 거래체결일(T+2일) 등도 KRX에 적용되는 규정을 ATS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넥스트레이드에서의 가격변동폭은 KRX 종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KRX와 동일하게 ATS에도 '5% 공개매수'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특정 종목의 지분율 5% 이상 주식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매수 조건·방법·목적을 사전에 신고해 알리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장외에서 주식을 매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