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14일.

당시 독일의 콜 총리는 바이겔 재무장관과 함께 수도 본에서 프랑크푸르트
에 있는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를 방문했다.

슐레징거 총재에게 금리인하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막강한 권력을 쥔 총리와 재무장관이 중앙은행 총재에게 그러한 일로 찾아
간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의 굴욕이라고 부른다.

세계경제를 위해 금리를 인하하라는 미국 등의 압력에 견디다 못한 콜
총리가 중앙은행 총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 것이다.

그 결과 중앙은행은 공정할인율을 0.5% 인하했다.

우리는 여기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독일 정부와 중앙은행의
모습을 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은 금융개혁법안을 놓고 진흙탕 싸움이 한창이다.

금융-외환 위기가 닥쳤는데도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개혁보다는 누가 더 큰 이권을 차지하느냐에 정신이
팔려 있다.

정치권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국가경제보다는 눈앞의 표만을 의식, 두 기관의 싸움에 질질 끌려만
다닌다.

비자금공방전 때의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소아병적인 집단 이기주의는 도처에서 나타난다.

심지어는 법원과 검찰간에도 실질 영장심사제도를 놓고 집단행동까지
벌이는 판이다.

행정의 공백 내지 표류상태는 특정부문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민정부 말기에 국정은 거의 마비상태라고 개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고위공무원일수록 책임질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몇달만 버티면 새정부가 들어서는데 구태여 위험소지가 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한보에서 기아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취해왔던 정책당국자들의
태도가 대표적인 예다.

기업활동에 사사건건 개입해 왔던 정책입안자들은 어느때 부터인가 자유
시장 찬미자로 둔갑했다.

그래서 산업계에서는 특단의 경제대책이 필요하다고 외쳐왔지만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딴 소리만 해왔다.

그러다가 막다른 지경에 다다라서야 허둥대기 시작했다.

지금의 극심한 불황과 금융패닉도 따지고보면 정부의 실책에서 기인한다는
산업계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돌아가는 꼴은 60~70년대의 미국사회와 흡사한 점이 있다.

당시 미국은 제조업의 급격한 쇠퇴속에 실업자가 양산됐다.

달러화는 급락했고 범죄는 급증했다.

관료주의가 만연돼 도처에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씨는 "아무것도 되는게 없네"(WHY
NOTHING WORKS)라는 책을 통해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아무것도 되는게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강경식 전 부총리가 만신창이가 돼 보따리를 준비하던 지난 18일, 멕시코의
기에르모 오르티스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멕시코는 이제 지속적인 경제성장
가도에 들었다"며 야당의 경기부양책 요구를 일축했다.

지난 95년 페소화 폭락으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에서 5백억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았던 멕시코.

그러나 이제는 남미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할 만큼 재기에 성공했다.

경제는 민.관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회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도 그런 예를 찾을 수 있다.

60년대 중반 일본도 극심한 불황으로 야마이치증권 같은 회사가 무너질
정도였다.

일본정부는 통산성을 중심으로 긴급 산업지원책을 썼다.

산업계에서는 노사화합으로 임금을 동결했다.

정부와 민간이 하나가 돼 메이드 인 재팬을 회생시킬 수 있었다.

국가부도직전에 새 경제팀이 출범했다.

팀이 바뀌었다 해서 나빠진 경제가 금세 좋아질 리는 없다.

그러나 멕시코 등의 예에서 보듯 민.관이 한마음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면 현재의 난국은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거창한 정책보다는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1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