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웅 < 산업1부장 >

한국의 정치는 드라마다.

음모와 술수가 있고, 배신과 반전이 도사린다.

여기다 거짓과 위선, 돈을 둘러싼 은밀한 거래와 폭로까지 가미되니
흥미본위의 3류극적 요소는 골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꾼들의 정치놀음엔 이제 신물이 났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들 역시 신문의 정치가십란에 중독되고 공허한 정치논쟁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건 바로 한국정치의 이런 특이한 저질극적 흡입력
때문일게다.

97 대선 드라마도 이제 클라이맥스다.

폭로전은 급기야 기업이 정치인에게 건네준 돈 문제로 번진다.

야당이 곧잘 사용하던 무기를 이제는 여당이 움켜쥐고 기업을 희생양으로
휘두르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여기서 이번 공방의 진위나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 기업과 기업인이 언제까지 정치권 주역의 이런 3류 드라마에
조연으로 끌려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정치권과 기업간의 금전수수 파문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때마다 돈을 받은 정치인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늘 당당하기만 했다.

반면 돈을 준 기업인은 대부분 위축되고 초라해보이기 일쑤였다.

돈을 받은 것보다 돈을 준 일이 훨씬 더 큰 잘못이기 때문일까.

수뢰내용이 사실로 밝혀져 구속되는 순간에도 "국민에게 죄송하다"고는
해도 피해를 입은 기업엔 미안해 하지 않는걸 보면 정치인은 기업이 번 돈은
당연히 나누어 먹어도되는 공범자의 수확물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기업에 대한 정치인의 이런 도덕불감증 현상은 어디서 비롯될까.

아마도 정치인이 기업인보단 훨씬 애국자며 큰 일을 하고 있다는 그들의
뿌리 깊은 착각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정치는 경제의 "상위개념"이며, 정치인은 기업인보다
"형이상학적 차원"에 있다는 독선적인 정치권의 발상, 그것이 바로 요즘의
우리경제를 망치고 기업가정신을 갉아먹는 또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의 경제에 대한 횡포 사례는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경제를 희생시켜 가며 무리한 위기의식을
조장했던건 군사정권시대의 전매특허였다.

문민정부 들어서도 사정이 달라진게 없다.

오히려 평생을 정치만 해온 사람들의 경제인에 대한 우월감이 더욱
지나쳤다는 느낌마저 있다.

정권출범당시 어려웠던 경제사정에도 불구, 무리한 사정 정국을 조성하고
기업인과의 대화를 외면해온건 바로 여론과 인기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해외순방에 나선 대통령이 현지에 나가있는 우리 기업인들을 격려하는데
인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난센스다.

정경유착이란 정치적 오해나 부담만을 인식했던 이런 행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가 세일즈맨화된 서구 정치인의 자세와 견주어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가.

야당 정치인이라고 물론 조금도 다를건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국감 현장에서 무책임한 설만을 들고나와 기업을 들볶고 호통치는건
오히려 야당의 주특기였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리면 경제없는 정치는 무망하다.

문민정부의 좌절은 그 교과서적 실례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많은 개혁의 추진과 성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문민정부는 추락하는 경제와 함께 빛을 잃었다.

지금 연출되고 있는 대선 드라마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정치권이 벌이는 그 뜨거운 공방의 내면속에선 벌써부터 경제를 정치의
하위개념으로 여기는듯한 교만의 편린들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성공한 정치인이 되려면 이제 경제앞에 겸손할줄 알아야 한다.

경제의 희생을 닫고 정치적 승리를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야
한다.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려면 또 대가없이 수억 수십억원의 돈을 바칠 기업이
있다는 꿈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아직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건 피땀흘려 번 돈의
가치를 모르거나 지신이 은연중 기업을 위협하고 있음을 모르는, 둘중
하나의 경우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