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5일 헌법재판소는 근로기준법 제37조 2항중 "퇴직금"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즉"위 법률조항중 퇴직금부분은 입법자가 1997년 12월31일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1998년 1월1일 그 효력을 상실한다.

법원 기타 국가기관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때까지 위
법률조항중 "퇴직금"부분의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37조 2항에 의하면 기업이 도산된 경우에 최종 3개월분의
임금과 퇴직금은 질권 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된 채권에 우선하여 변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종 3개월분"이라는 한정규정이 퇴직금에 대해서도 적용되느냐 하는
법해석상의 의문에 대하여 그동안 대법원판례는 1995년 이래 부정적 태도를
취하였다(대판 1995.7.25,94 다54474:대판 1997.1.21. 96 다 457).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37조 2항이 개정.신설된 1989년 3월29일부터
퇴직시까지의 퇴직금은 동 규정에 의하여 전액 최우선적으로 변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기업금융에서 그 채권확보 내지 회수수단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저당권이라는 담보물권 제도인데, 퇴직금
채권자에게 저당권자에 우선하여 그 퇴직금전액에 대하여 아무런 제한없는
우선변제 수령권을 인정하는 것은 담보물권제도의 근간을 흔들어놓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기업이 전체 종업원에게 지급해야할 퇴직금의 액수는 기업의 종업원
숫자와 근속 연수가 늘어날수록 증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이 저당권을 설정하고 기업에 기업자금을 융자한다
하더라도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기업연륜이 쌓일수록 금융기관의
채권확보는 사실상 형해화하고 말게 된다.

기업의 운영상태가 악화되는 경우에 금융기관은 사업자금의 융자를
기피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금융을 얻어 기업회생이 가능한 경우에도 기업은 자금의
대출을 얻을수 없게 되어 결과적으로 도산을 모면할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로자들의 퇴직금변제확보 제도가 노동의 기회 뿐만 아니라
기업자체의 존립의 희생을 초래하게 된다.

병을 고치려다가 생명을 잃는 우를 범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퇴직금채권을 금융기관의 담보된 채권에 우선시키는 것은
담보물권제도를 주축으로 이루어지는 신용제도를 침해하는 것임은 물론
결과적으로 기업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볼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편으로 퇴직금 우선변제를
규정한 제37조 2항의 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근로자의
생활보장 내지 복지증진이라는 근거를 내세워 금융기관(담보권자)의
담보권을 이른바 "과잉금지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는
합헌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퇴직금의 정액이 아니고,근로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할수 있는 적정한 범위 내의 퇴직금채권을 다른 채권보다
우선변제하도록 하는 것은 퇴직금의 후불임금적 성격및 사회보장적
급여로서의 성격에 비추어 위헌이 아니라고 한다.

과연 퇴직금청구권이, 예컨대 3년 또는 5년분의 것으로 제한되면 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된 채권에 우선하여 변제되더라도 합헌이라고 할수 있는가.

퇴직금청구권의 범위가 제한되더라도 종업원수가 증가하고 봉급액의
기준이 상승하는 한 그 액수는 확정될수 없으며, 우선변제되는 퇴직금은
어떤 형태로도 공시될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된 금융기관의 채권이
침해되는 것은 제한규정을 두지 않은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본적 경제질서와 관련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금융기관에 의한 산업금융의 제공이 곧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고용확대및 경쟁력강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국민경제의 기초가 되는 산업의 존립및 발전은 자본주의경제체제를
기본으로하는 우리나라 경제헌법의 1차적인 보호대상이라고 할수 있고,
그 전제가 되는 산업금융제도의 차질없는 운영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내용이라고 해야 한다.

근로자의 임금및 퇴직금청구권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지만, 이를
보호한다고 하여 반드시 산업금융제도와의 충돌관계에서 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임금 퇴직금 보전조치는 산업금융
제도의 한 부분을 이루는 담보제도와의 충돌-경쟁 관계에서가 아니라 그와는
별개의 보험제도 또는 기타의 보전제도에 의하여 실현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근로자의 퇴직금보전조치가 담보제도에 의하여 보전된
금융기관의 채권을 침해하는 것은 설령 우선변제될 퇴직금의 범위가
한정되더라도 현행 경제헌법에 위배되어 위헌이라고 판단된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기본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로자의 임금 퇴직금은
별도의 보전조치를 취하여 보다 적절한 보호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잘못 들어선 편의적 입법방향은 차제에 근본적으로 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봉책으로서의 절충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된다.

과도입법을 해서라도 현재의 상태를 마무리지은 다음 임금및 퇴직금
청구권을 저당권에 의하여 담보된 채권과 충돌되지 않도록 분리하여 보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