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권 여사님"

"권 여사님? 이거 아주 변절하셨잖아?"

그녀는 아직 옛날의 돈이라면 환장을 했던 지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도 당당하자 권옥경은 갑자기 정신이 든다.

아무 때나 자기에게 수청을 들어주던, 동침을 하면서 입술이 부르트도록
그녀를 사랑해 마지 않던 지영웅은 어디로 갔나?

그녀는 갑자기 지영웅의 튼실하고 광폭한 육체의 마력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아직은 농을 섞어서, "코치님, 모닝커피를 한잔 하시면서 면담을
하실까요?"하고 앞장선다.

지코치가 성큼 바를 향해서 앞장서다가, "참, 바는 아직 안 열었어요.
요 옆의 호텔 커피숍으로 가실까요?" 하고 정중하게 옛날의 브이아이피
고객으로 모신다.

그들은 무거운 침묵속에 호텔 커피숍안으로 들어선다.

약간 살이 붙은 권옥경은 그러나 여전히 자신만만하고 멋진 모습이다.

그러나 약간 찌푸려진 양미간에는 굵은 주름이 두개 그어져 있다.

워낙 있었던 것이지만 오늘은 그 주름이 아주 그녀를 늙어보이게 한다.

"자기 못 만나는 동안 많이 변했다. 우선 많이 야위고 탔다. 자기 만나고
싶어서 삐삐랑 핸드폰이랑 많이 날렸는데 하도 콜백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어"

"죄송합니다. 귀국한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요"

그는 아주 낯선 사람처럼 냉랭하다.

"마음 변했다면 지코치를 다시는 안 만나겠어. 아무리 결혼할 수 없는
사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같이 어울려. 안 그래?"

"마음 변했어요"

그는 뚝 부러지게 자신을 가지고 말한다.

"어머! 무섭다. 자기 정말 나하고는 이제 끝장이야?"

"네"

그러자 권옥경이 휘청하면서 지영웅을 빤히 바라본다.

아무리 눈씻고 봐도 지영웅같은 변강쇠는 없다.

그렇게도 잘 생기고 관능적인 매력에 넘치는 남자는 없다.

그 지구력과 광적인 힘을 당할 장사는 아직 없었다.

그녀는 한때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하려던 자기의 판단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남편은 학벌 가문 인격 그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으로 섹스가 약한 남자다.

남편은 책보다 여자를 덜 좋아할 뿐 아니라 권옥경의 단순하고 살림도
억망으로 하는 태도에 권태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너무나 맞지 않았다.

한쪽은 학구적이고 냉담한 사람이고 권옥경은 스포츠와 섹스를 위해서는
만사를 희생하는 전혀 이질적인 부부였다.

그들은 두명의 자녀를 위해서 겨우겨우 결혼을 유지하고 있었다.

권옥경은 정력적으로 생긴 지코치의 단단한 턱과 푸른 수염자국에서
갑자기 관능적인 어떤 순간의 황홀경을 기억해내며 부르르 떤다.

억제할 수 없는 리비도의 광란이 온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