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원 관리들은 요즘 한은 직원들의 월급이 자신들의 두세배는 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은직원들은 "그렇다면 서로간에 재산을 공개해보자"고 조건반사적으로
맞선다.

80년 이후 네번씩이나 맞붙다보니 이제는 명분도 논리도 실종되고 쌍방간에
노골적인 감정만 남았다.

재경원으로서는 금융개혁안 마련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지만 이 말을
곧이 새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독립"이 오히려 후퇴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측 주장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달라고 투쟁해야 조금이라도 더 얻어낸다는 협상의 논리는 마치
한국 정치의 재판같다는 비난만을 듣고 있다.

힘있는 자들끼리 감독권한을 나누어 갖자는 것이 금융개혁의 본질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실 생존권 사수를 내건 한은이나 정부의 고유권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재경원이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권력기구들일
뿐이다.

이번 만큼은 모든 기득권을 떨었다고 주장하는 재경원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무리한 관치 은행장 인사로 파동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한들 믿을 수 없게 되어 있는 셈이다.

한은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은이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은행감독원은 6조원의 거대한
부실 여신을 일으켰던 한보 사건 처리 과정에서 아무런 공정성도 전문성도
보여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감독 부실에 책임진 사람도 없었다.

양쪽이 모두 그런 처지에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바로 그것이 한국
금융이 낙후된 원인을 반증하고 있음에 다름 아닐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등뒤에 비수를 감춘 재경원이나 독립 쟁취의 낮뜨거운 명분을 내건
한국은행의 고함소리에 진솔한 경청의 귀를 빌려줄 사람은 없다.

이번 만큼은 질좋은 금융서비스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당초의
희망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됐다.

제사보다 젯밥에 눈이 멀어있는 치졸한 싸움에 금융기관들은 진작에 등을
돌려버렸다.

정규재 < 경제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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