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의 지난 50년은 근대적 의미의 산업화 모습을 갖추는 과정이었다.

김세연(대창공영대표) 김재학(제헌국회의원)씨등 건설계 원로들이 주축이
돼 지난 47년 출범시킨 조선토건협회는 이후 대한건설협회등 지금의 각종
건설단체의 산파역을 자처하며 건설산업화에 불씨를 댕겼다.

해방당시 1백70여개에 지나지 않던 건설업체는 6.25전쟁 직후 3천여개로
늘어나면서 전후복구사업과 군납건설을 중심으로 시장 기반을 닦는다.

3공화국 출범과 함께 62년부터 본격화된 국토개발사업으로 활력을 얻은
건설업은 양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며 65년엔 태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해외공사를 수주하는 개가를 올린다.

60년대엔 양질의 기술인력과 시공기술등을 키웠고 70년대와 80년대초엔
"중동붐"을 맞아 한해 수주고가 1백억달러를 넘어서는등 해외건설의 꽃을
피웠다.

이땐 국내건설도 성장의 가속도가 붙었다.

80년대 중반에는 중동경기의 퇴조로 건설업계가 구조조정을 겪는 가운데
과당수주경쟁 주택미분양등으로 건설환경이 악화됐지만 분당등 수도권
신도시건설과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으로 국내 공사물량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성숙기를 맞게된다.

또 작년에 해외건설 수주고가 다시 1백8억달러를 기록하는등 90년대
들어선 동남아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이 되살아나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이제 건설업계는 시장개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등 급변하는
건설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완벽 시공,
건설기술 능력제고등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방형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