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여성 보험설계사의 희망.

삼성생명 신정재 설계사, 대한생명 정도순 이사, 교보생명 김옥선
영업국장 등 생보업계 3인방은 보험업계 맨발의 전사들의 영웅이다.

이들 여걸은 보험영업이란 험난한 야전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소속회사에서 여성설계사로선 최고봉에 우뚝 섰다.

1년에 수만명씩 들어왔다가 그만두는 보험설계사 세계다.

이들 여성 3인방은 험준한 보험세일즈 전선에서 역경을 넘었다.

전진 또 전진.고지를 점령했다.

이들 3인방의 공통점을 찾자면 학력.경력에 관계없이 맡은 영업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범한 진리다.

하지만 이들에겐 "눈물과 땀"의 결실이었다.

지독한 악바리 근성이 없으면 중간에 포기해도 1백번을 했을 것이다.

한국보험산업을 세계 6위로 끌어올리는 데 숨은 견인차 역할을 한 이들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 삼성생명 신정재 설계사

96년 삼성생명 연도상 여왕으로 탄생하면서 생보업계에 스타로 떠오른
여걸.

올해 2년 연속 연도상 여왕이 유력시되고 있다.

91년 5월 씨티은행을 그만두고 삼성생명에 발을 들여놓은 신씨는
은행근무 경력과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배운 마케팅을 영업에 적극 활용,
성공을 거뒀다.

철저한 보험상품 소개와 설득으로 완전판매를 하며 계약자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금융박사"라는 애칭에 걸맞게 상품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해박한
금융지식으로 무장돼 있다.

"생활설계사는 프로의식과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완벽한 고객서비스로 고객으로부터 신뢰감을 얻는 게 보험영업의
기본이다"

신씨가 항상 동료설계사나 후배 설계사에게 하는 말이다.

현재 연세대 경영대학원 총동창회 상임이사를 맡을 정도로 보험이외에도
다방면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신설계사가 만나는 고객은 주로 변호사 의사 금융인 등 고소득층.
언론계에도 발이 넓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들에게 보험의 필요성을 역설,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96년초 펴낸 "프로의 세계 그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책자의
서문에서 생활설계사 활동에 대한 그녀의 심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하나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가슴을 졸이고 머리를 싸매며
뛰어다니는 일은 정말로 스릴이 넘친다.

무한대로 널려있는 가능성을 찾아서 뛰어 다닌다.

이 얼마나 창조적이며 멋진 일인가.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것이다"

연도상 수상후 은행 증권 백화점 등에서 30여차례 강연회에 초빙돼
보험과 경제금융 전반에 대한 강의를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TV 라디오 일간지 잡지 등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를 여러번 하는 바람에
길에서 신씨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신씨는 "언론에 여러 번 나간 이후 방송국이나 신문사를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 보험이나 대출상담을 해오는 사람도 생겼다"고 말했다.

남편은 제일물산을 경영하는 이규장씨로 슬하에 1남2녀를 두었다.

<> 대한생명 정도순 이사

보험업계 최초 여성임원.

설계사시절 소득랭킹 1위.

가는 곳마다 1등 신화를 창조해낸 영업국장.입지전적인 인물.

정도순 이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이처럼 화려하다.

현재 보험영업의 심장부인 서울총국에서 사령탑인 총국장을 맡고 있어
직책상 권한도 막강하다.

군대로 치면 사단장급에 해당하는 영업국장을 자그마치 16명 (여자 3명
포함)이나 거느린 보험야전사령관이다.

산하에 소속된 8천여명의 설계사를 통솔한다.

물론 본인은 지원한다고 말하지만.

정이사가 걸어온 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역사였다.

대전여상을 졸업하고 주부로 있다가 지난 73년 35세에 설계사로 출발,
회사전체 소득 1위를 수년간 지켰으며 영업국장 시절엔 가는 곳마다 1등
영업국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93년 3월 생보업계에선 최초로 여성출신 이사대우로 승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94년 1월 강남총국 개국과 함께 총국장으로 임명됐다.

드디어 작년 5월 이사로 "대우" 꼬리를 뗐다.

특히 강남총국은 새로 탄생된 총국이었는데 정이사가 맡자 역시
총국정상의 자리에 올려놓더니 최우수총국 2연패를 차지했다.

일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고 부하직원의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어려운 때 일수록 언제나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한번 조직에서
만났던 직원들은 언제나 친누님처럼 따른다.

탁월한 리더십과 함께 어느 조건에서라도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일을 추진하는 뚝심에는 모두들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정이사의 승부근성은 설계사 시절부터 몸에 배인 것으로 보인다.

"하면 무엇이든 된다"는 신념이다.

부하직원들에겐 "늘 구하라,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을 강조하곤 한다.

50대 후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건강관리에도
철저하다.

평소 수영으로 단련된 건강미와 등산실력이 웬만한 청년들을 능가할
정도라고 주변사람들은 말한다.

이사연봉으로 연간 8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1년에 평균 1천2백만원 정도를 버는 일반 설계사들에겐 꿈같은 얘기로
들릴 수 있다.

<> 교보생명 김옥선 영업국장

교보생명의 간판급 여성영업국장인 김옥선씨는 야전을 누비는 여장부다.

원만한 대인관계에 설득력 있는 말솜씨,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을
간직했으면서도 "칠전팔기"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별명도 오뚝이다.

독일병정이란 말도 듣는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김국장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국장직을 수행하려면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업국장 자리는 남자에게도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10명안팎의 영업소장을 거느리는 중견간부로 국장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바뀔 수 있기 때문.

"영업국장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도 많지만 영업국 직원들과 한 덩어리가
돼 전국 제패를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다"

최근 김국장은 소속직원들을 독려해 교보생명의 1등 영업국을 기필코
이뤄내고자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가정주부와 2녀의 어머니로서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김국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장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선 가정에서도
최고가 돼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곤 한다.

남편 이윤동씨는 운수업을 하고 있다.

포항 동지여상을 졸업하고 지난 70년 한일은행에 들어갔다가 79년
교보생명으로 직장을 옮긴 뒤 20년 가까이 포항을 무대로 보험영업활동을
펼쳐왔다.

그래서 포항의 보험바닥에서 김국장을 모른다면 시쳇말로 간첩이다.

현재 맡고 있는 포항리라 영업국이 1년에 거두는 수입보험료는 3백24억원.

웬만한 마을금고보다 많다.

연봉은 5천5백만원 수준.

각 보험사에서 연도상을 받는 일부 설계사들이 연간 수입으로 1억~
3억원을 벌지만 이중 30~50%는 영업비용으로 쓴다.

하지만 영업국장은 별도 판공비 (사업비나 시책비)가 회사에서 나오기
때문에 연봉은 거의 수입으로 가져간다고 봐도 된다.

김국장의 희망사항은 5~6년내에 교보생명 최초의 영업이사가 되는 것.

보험영업의 "별"자리에 오르면 더 큰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은 게
김국장의 일욕심이다.

교보생명 특유의 공격적인 근성이 몸에 배인 김국장.

그녀의 희망사항 달성은 계획보다 앞당겨질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8일자).